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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Dec 06. 2022

나처럼 되면 안 돼니까


 초등학교 1학년 중간 무렵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갑자기 바빠 보였다. 영문을 모른 채 엄마가 집에 없는 날엔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저녁에 씻는 일도 갑자기 혼자 씻어야 됐다. 엉성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았다. 위로 언니가 두 명 있고 아빠도 할머니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자립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스스로 하는 어린이가 돼야 했다.


엄마가 없는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입을 무겁게 만들었다. 현관을 열면서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 신발이 있나 없나를 훑었고 빈 부엌에 들어가 차가운 식탁 유리를 응시할 때의 내 기분은 심장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언니와 동생이 있어도 함께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쫀쫀한 사이가 되기보다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부탁한 소소한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많았다.


아이를 키우며 종종 드는 생각은 내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꼭 안아주며 '잘 다녀왔어? 보고 싶었어.'라고 말할 때의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분명 나는 아이들의 엄마고 종일 내 품을 벗어나 아이들만의 사회생활을 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환대인데 입이 잘 안 떨어질 때마다 설명 안 되는 미안함이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며 울음 섞인 말로 힘겹게 얘기할 때 내 첫마디는 '혹시 네가 실수한 게 있는 건 아니니?'였다. 후회했다. 기댈 건 엄마뿐이었을 텐데 차분하게 대응한 내 말투에도 상처부터 받은 건 아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한 적 없고 잘 모르겠다는 아이 말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오해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친구한테 카톡으로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oo아, 오늘 나한테 갑자기 거리 두고 모른 체 하던데 무슨 일 있니? 나 때문에 화난 거 있어?"

몇 분후 답이 왔다.

"아니,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꺼."

옆에서 카톡 메시지를 같이 보는데 '신경 꺼'란 단어가 거슬렸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라면 쓰지 않을 단어로 보이기 때문이다. 딸은 찝찝한 표정을 한채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중2 때였는데 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전달하는 쪽지를 앞 친구에게 몰래 주다가 선생님한테 내가 걸린 적이 있다. 애당초 시작한 애들은 가만히 숨죽이고는 억울하게 내가 뒤집어쓴 셈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침울하게 엎드려 있는데 쪽지를 전달시킨 애들 중 누구 하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다음 시간도 그다음도. 3교시가 끝나고 짜증 난다는 식의 말로 기분을 표현했는데 오히려 그 친구들이 화를 더 냈고 급기야 청소 시간에 분리수거장으로 부르더니 나를 둘러싸고 서너댓 명이서 나를 쏘아붙였다.

혼자 힘으로 그 친구들의 싸늘한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결국엔 혼자가 됐다. 밥도 혼자 먹어야 했고 쉬는 시간 얘기 나눌 친구도 없었다. 딸 앞에 놓인 문제가 중2 때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 나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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