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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Feb 11. 2023

어머니가 딸을 바르게 키운 것 같아요

바르게 키우면 따돌림 안 당할까요

알고 보면 간단하게 오해를 풀 수 있는 일인데 사춘기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딸은 중학교1학년 2학기 시작하고 어느 날 잘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자기를 외면하고 거리를 둔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친구가 그날따라 기분 안 좋은 건 아니었는지 괜찮을 거라고 다독였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심각해져 집에 돌아왔다. 자기랑 대화 나누고 있는 친구를 그 친구가 불러내서 

내 딸 주위에 아무도 없게 만든 것이다. '따돌림'이다.


tv에서나 보고 주위에서 그런다는 얘기만 들었지 내 딸한테 일어날 일인 줄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딸은 하루하루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당장 같이 밥 먹으러 갈 사람이 없어졌고 여학생들만의 우정을

확인하는 공간인 화장실도 혼자 눈치 보며 다녀야 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째려보거나 수군거리는

것처럼 느껴져 교실에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담임선생님하고 상담을 하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섣불리 나섰다가 일이 꼬일지도 모른다며 딸은 자기가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지나고 열흘 지나도

아무 진척 없어 보여서 딸한텐 말 안 하고 담임 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oo엄마예요. 요즘 예진이 일로 상담하고 싶습니다.'

빠른 답장이 왔다.

'네 어머님. 알고 있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알고 있다고? 무슨 일인지 자세히 언급도 안 했는데 이미 알고 있다는 말로 답장이 왔다. 곧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oo이가 지금 피해자 입장이 맞긴 하는데 어떤 친구에 대해서 흉보는 말을 한 게 있어서 그 일로 딸을 

역으로 따돌림시키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서 놀랐지만 지금 딸의 상황이 등교를 

거부할 만큼 안 좋으니 선생님이 알고 계시다면 빨리 개입해서 아이들 간의 오해를 풀어주기를 부탁했다.


엄마로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고통스럽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학원에 가는 아이에게 속은 울면서 겉으론 웃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과 전화 통화한 날도 참던 눈물이 터져서 종일 힘들었는데 당사자인 아이 마음은 얼마나 많이 무너져 있을까. 아이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다른 친구 흉보는 말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면 더 고통스러워할 텐데 말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B에 대해 나쁜 말을 네가 했었다는데 사실이니." 딸은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어 엄마. 그건 B가 얌체 같이 구는 데다가 지난번에 교내 상장받는 걸로 나는 한 번도 못 받았다고 했더니 그러게 너도 좀 잘하지 그랬냐면서 위로가 아니라 얄밉게 말하길래 나 상처받았다고."

그랬었다. 1학기에 여름방학을 앞두고 B가 교내 시상에서 상장을 두 개나 받았는데 그땐 둘이 무척 친했었고

딸은 상장을 하나도 받지 못해서 속상하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너도 그럼 열심히 좀 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날 그 일에 대해 말한걸 똑똑히 기억한다.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기분 나빠했던 딸의 표정도 기억한다. 그 뒤로 딸은 그 친구를 조금 멀리 한 모양이었다. 그리곤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한

C에게 그 일로 기분이 좀 안 좋다고 말한 일이 친구들에게 말이 옮겨지면서 내 딸이 B를 따돌렸고 욕을 하고 다닌 걸로 번지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 더 최악이 된 건 B와 C가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과 연관돼 안 좋은 감정이 담긴 말을 한 것 자체가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 얘기가 부풀려지면서 얘기 꺼낸 적도 없는 D, F, G 등등의 함께 어울리던 9명의 친구들이 모두 딸을 외면하고 등 돌려 버린 것이다.

그중 가장 파워가 센 녀석이 '우리 OO이 이제 빼버리자. 저런 애 친구로 둘 수 없지. 우리도 상처받았고 피해자야.'라고 대동단결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위클래스에 상담 신청을 해 상담을 받고 있었다.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담임선생님을 직접 찾아갔다. 내 딸은 B에 대한 얘기를 C에게 전달한 것은 험담 목적이 아닌 C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말이 새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험담을 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아이들과 오해를 풀고 서로 자기 잘못을 인정해 사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었다. 선생님은 내 부탁대로 그런 자리를 만들어 서로 사과를 주고받았다고 전해왔다. 끝이 아니었다. 사과를 전한 뒤 아이들은 더 강하게 나섰다. 탈의실로 딸을 불러내서

사과는 했지만 우린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너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있는 듯 없는 듯 대할 거 같다며 공식적으로 따돌리겠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딸은 이런 얘기를 듣고도 겉으로 큰 울음소리 내지 못한 채 계속 자기를 괴롭혔다. 속상하다고 펑펑 울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말도 잘 안 하려는 데다 크게 울지도 않으니 내 속만 타들어갈 뿐이다. 집에서 이런 모습들을 담임선생님과 나누었다. 지금 무척 고통스럽고 힘든 거 알지만  OO이가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기가 돕겠다고 했다. 어떻게 도와줄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선생님이 내 딸만을 위한 사람도 아니고 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담임인데 지금 가장 피해를 입은 게 내 딸이라고 해서 내 딸 편에 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종종 딸을 교무실로 불러 기분이 어떤지, 그 아이들이 불편하게 하는 일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딸은 괜찮다, 그 아이들과 눈 안 마주치려고 교실에 안 있는다, 다른 반에도 친구들 있어서 그 친구들 만나면 된다고 했다는 거다. 그런 모습 보면서 스스로 씩씩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어머니가 딸을 바르게 잘 키운 것 같다고 했다. 

위로는커녕 예의상 하는 말로만 들리는 선생님 말이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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