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누가 그랬더라. 아이가 크면 클수록 육아에서 해방된다고. 그것이 거짓말이란 걸 안 것은 딸이 중학교에 입학해서였다. 왜 육아는 나만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삼성 이재용 회장도, sk 최태원 회장도, 오은영 박사도 육아는 힘들었을까?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아이 넷, 시부모님, 시할머니까지 모시며 살았는데 그땐 어떻게 육아 스트레스를 풀었을지 새삼 엄마의 노고를 깨닫게 한다.
중학교 입학 후 몰라보게 성장한 딸의 자아는 나를 별난 엄마로 만들었다. 새로 사귄 친구와 놀러 간다고 하면 어디에서 노는지, 누구와 있는지, 뭘 먹을 건지, 이동 수단은 뭘 이용할 건지, 어떤 얘길 나눴는지 시시콜콜 묻고 답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내가 딸의 나이 때에 했던 것만큼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 입장에선 부모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인 '친구', '시간'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을 텐데 눈치도 없이 엄마란 사람인 나는 자꾸 침범했던 것이다. 그저 내가 정해 놓은 룰에 벗어나지 않으면 착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놓고 엇나가고 있다고 믿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이제는 부끄럽다.
몇 년 전 독서모임 사람들과 함께 쓴 공저 <책에 나를 바치다> 에도 딸의 초등학교 4학년 에피소드를 썼다. 친구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듣고 상처받았을 딸을 대신해 나섰다가 급기야 담임 선생님한테까지 고해바친 후 상담을 하게 됐는데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뭐 때문에 고민인지 알겠다고 했으나 지나친 걱정을 하는 나를 두고 '어머님이 더 걱정입니다'라는 말까지 했던 기억.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됐다. 고등학생이 되면 성숙해져서 중학교 때 가졌던 고민이 덜어지겠지 싶었는데 더 고차원적인 고민과 걱정 주머니가 커져버렸다. 아이는 성숙해진 만큼 이성교제에 관심이 생겼고 어설프게 결정했던 진로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의문을 품었고 공부가 되지도 않는다. 시간 맞춰 잘 가던 학원은 보강 수업 있다고 거짓말해가며 나가서는 친구를 만나고 오는 일도 있었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심하게 혼내도 봤는데 오히려 입을 닫고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졌다.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수도 없이 들었던 아이는 솔직하게 말하면 보일 내 반응이 두려워서 그랬을 거다. 나의 서툰 엄마 역할이 아이를 망치게 하는 건 아닌지, 이대로 두었다간 사회생활에서도 나한테 하듯 거짓말로 둘러대다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육아에서 해방되는 일이란 건 정해진 횟수 없는 기저귀 갈기, 씻기기, 먹이고 재우기였을 뿐 진짜 육아의 시작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오늘 등굣길에도 차 안에서 딸의 말투에 서운한 감정이 들어 거꾸로 화를 내고 말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딸이 잘 못 한 일이 맞긴 하는데 포용력 있게 어른처럼 대하지 못하고 버럭 하며 싸가지 운운했던 내가 부끄럽다. 어떻게 하면 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과한 집착과 걱정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