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머신 리모컨이 작동되지 않아 고객센터와 통화하던 날, 통화중 대기 알림이 뜬다. 엄마다. 상담원과 통화중이어서 일단 수신보류를 해놓고 통화를 마친 뒤 전화를 바로 걸까 말까 고민했다. 구입한지 겨우 2주밖에 안된 건데 갑자기 사용에 문제가 생기니까 48개월 동안 29,000원씩 빠져나갈 돈이 왠지 사기 맞는 것 같다랄까. 알고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남편은 옆에서 반품하라며 더 열을 내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화살이 나한테 꽂히는 이상한 기분. 이런 타이밍에 꼭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기분이 나아지면 전화를 걸까 망설이다가 통화한지 며칠 되어서 또 무슨 하소연을 털어놓고 싶어 그러는지 들어줘야 갰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 전화하셨어요?”
“응. 어디냐?”
“집이지.”
“신 서방은 출근 했냐? oo이 병원은 갔다 왔어? 뭐라 그래?”
“네, 각도가 조금 벌어져서 담당교수 진료를 봐야겠다고 6개월 뒤에 오래요. 10명에 1명 정도는 재수술하기도 하지만 아직 그 정돈 아닌데 어쨌든 2년 전보다는 달라졌대.”
큰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 양쪽 눈을 외사시 수술을 했다. 수술하고 지금 5년짼데 그동안 괜찮다가 올해 들어 눈동자가 조금 틀어져 보였고 그것 때문에 병원 다녀온 이야길 나눴다. 내 얘기를 들은 엄마는 다시 물었다.
“수술해야 된대? 사시 때문에 간 거야?”
순간 욱하고 올라온다. 그럼 사시 때문에 간 거지 뭐 때가 갔겠냐고 툭 던진 내 한마디로 안부 물으러 전화했던 엄마한테 불꽃이 튀었다.
“야, 근데 너 왜 말투가 그래? 엄마한테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뭐니? 오래되어 기억이 안날수도 있지 상냥하게 말하면 될 걸 너는 꼭 그런 식이더라?”
엄마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서 언성을 높였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서로 소리 높이다 끊어버렸다.
‘꼭 그런 식’이란 말. 내가 그런 식이라니.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엄마한테 묻고 싶다. 엄마의 세째딸은 엄마의 인생에서 어떤 딸이었냐고.
딸들 중 유독 엄마랑 마찰이 심한 사람은 나다. 엄마는 나랑 싸우고 나면 언니들한테 돌아가며 전화를 걸어 현옥이란 년이 글쎄 이러더라, 저러더라 하면서 하소연한다. 내가 엄마 가슴을 멍들게 한다고 말이다. 당신이 똑같이 사랑을 주고 키워놨는데 언니들이랑 비교하면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며 속상하다는 것이다. 언니들도 엄마의 이런 얘기를 듣는걸. 좋아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지 않냐 며 너도 어른답게 생각하라는 말뿐이다.
결론도 없고, 해결점도 없는 엄마와의 감정 싸움은 늘 찝찝하고 언짢은 기분에 애먼 사람한테까지 감정이 전달되기 일쑤다.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자라지 않아서 인지 어른이 되었고, 애 엄마씩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뭔가 보상 받고 싶은 어린 아이 마음이 남아 있다. 엄마의 고정 레파토리는 "애 둘을 낳고도 아직도 그 소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이다. 내 정신은 원래 없던 것인가?
엄마의 간곡한 바램인 내 정신에 대해 말하자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에게 못 받은 정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아이들끼리 놀다가 장난감을 뺏겨서 울 때 억울하고 분한 내 아이의 속상함을 먼저 보고 안아줘야 하는데 그런 걸로 우냐고 울지 못하게 막아서는 경우가 그렇다. 이럴 때면 '나 어릴 때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어떻게 대처 해줬더라? 기억이 안나.' 애써 기억을 해내려고 두뇌를 풀가동 시켜보지만 끝내 지혜로운 생각이 나오지 않았다. 말 못하고 엄마 얼굴만 보면서 울기만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처럼. '엄마 저거 내꺼야. 도와줘.'라고 말 한마디만 했어도 좋았었는데 왜 그말을 못했는지.
울지 말라고 하면 당장 멈춰지지 않는 눈물만 연신 훔치다 울음 소리를 작게 내어 속으로 삼켰던 어린 나와 내 아이들이 겹쳐 보이며 꽤나 힘들었었다. 나는 그 후로 어렵고 난처한 일이 생겨도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날도 엄마랑 전화 통화로 예기치 않게 감정적인 대화가 오갔고 오후 내내 속이 상했다. 그냥 참을걸. 이제 와서 엄마를 바꾸게 하려는 내 의지를 내보이지 말걸, 후회와 자책이 넘나들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딸 년한테 모진 소리 듣고 또 속이 상한다고 툴툴 거렸을까? 아니면 얘가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나, 언제쯤이면 내 말에 고분고분 해 질까 또 기대를 할까?
매번 같은 상황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보던 남편은 이제 거들어 주지도 않는다. 엄마 살아 계실때 잘하라고, 엄마 말에 예민하게 촉을 세워 듣지 말라고 한다. 그래, 남편 말도 틀린건 아니지. 내가 왜 책을 읽고 글을 쓰겠어. 다 이런 걸 견뎌내고 털어버리고 나 행복하게 살기 위한 거잖아? 하루를 넘기고 점차 마음이 가라 앉을 때 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날 엄마한테 툭툭 던졌던 말투가 거슬렸던 거에 대해 미안하다고. 엄마 때문은 아니었는데 조금 예민했던 일이 해결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몇 시간 뒤 엄마도 답장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대방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는 거다.
슬픈 일 속상한 일 두루두루 왜 살다보면 없겠니. 허나 내 감정에
치우쳐서 상대한테 예민한 것은 예의로 보나 도리로 보나 감정을 잘 추스릴줄 알아야 어른이지. 너 애들한테나 남편한테나 그런 식이면 애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생각해봤니? 애들 성격도 이상해지고 너같이 되면 어쩔라고....
(생략)
답장 앞에서 나는 다시 흔들린다. 알겠다고 짧게 한마디로 끝내야 되나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고민했고 최대한 내 감정을 보호하며 조심스럽게 답장을 했다.
’평생 살갑게 군 적 없는 딸이 갑자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늘 엄마랑 전화로 싸우던 기억은 좋은 기억이 아니잖아요. 안 되는 줄 알면서 툭툭 나오는 말에 서로 상처주는거 싫어서 저 혼자 있는걸 선택한거같아요. 엄마도 나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듯이 나도 엄마 말에 상처받고 힘들었어요. 내 속마음은 그래요. 못난 내 탓이지요. 부족해서 그래요. 그래서 좋은 책 많이 읽고 마음 다지고 있어요. 점점 좋아질 일만 있겠죠. 엄마 말씀 명심할게요. ‘
이 대화로 끝낼 줄 알았는데 엄마는 마지막까지 일침을 놓았다.
’엄마는 네가 그럴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새끼니까 내가 품어야지. 세월이 흘러 너두 자식 키우니 알 때가 있겠지.
제발 네 말대로 좋은 책 많이 읽고 좋은 아내 착한엄마 착한 딸 되어다오. ‘
하아. 내가 미안하다고 전한 마음은 전달이 된 걸까. 장문의 카톡을 두세 번 오고 간 뒤 후련하기보다 더 갑갑해졌다. 엄마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서운하고 서럽고 속상한 건지.
나이들 어가는 부모님, 엄마라는 이름만 입에 올려도 눈물 난다는 사람들을 솔직히 이해하지 못한다. 친정엄마찬스로 아이 맡기고 휴식을 취한다거나 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준다던가하는 일은 나에겐 사치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부담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쩌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을꼬. 내가 참으로 애달프다.
모녀 사이에도 애증의 관계가 성립 되는 걸까? 사랑도 있는데 미움도 있는 엄마와 나 사이가 야속하기만 하다.
단 한번이라도 ’그래, 알겠다. 나도 같이 화내서 미안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속상했겠다.‘고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