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대 갱년기

이 지랄맞은 사춘기의 절정과 갱년기의 시작

by 책사랑꾼 책밥


하도 순해서 할머니 말씀으론 네 살까지 말을 못 하는 애인줄 알았다고 했다. 방실방실 웃기나 하고 배고파 울지도 않고 졸려 보채지도 않고 잘 자고 잘 먹는 아이였단다.

동네에서 순하기로 일등인 나였다. 그랬던 내가 지랄 맞은 성질을 보인 때는 중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친구와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때면 털어놓기보다 괜한 화를 부렸다. 잘하던 심부름도 왜 나만 시키느냐 툴툴거렸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심술 아닌 심술을 부렸다. 버르장머리 없이 문 닫고 들어간다고 더 크게 혼이 났고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전설로 내려오는 사춘기 고정 대사가 자동 발사다. 심술이 난 날에는 밥도 안 먹었다.

방에 처박혀 이 집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며 자학하다가 잠이 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났다. 한 때는 그 시절에 왜 엄마는 나를 다독이며 따뜻한 말을 해주지 않았었는지 서러워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입장이 되었다.


고등학생 딸은 사춘기다. 중학생 때는 원만한 친구관계를 만들지 못해서 거의 나와 시간을 보내느라 나를 엄청 따르고 말을 잘 듣는 아이인 줄 알았다. 나한테 심술도 안 부리고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같은 모녀가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눈만 뜨면 싸우기 바쁘다. 아니 말만 하면 싸우기 바쁘다.

딸의 말투는 꼭 심술부리던 중학생 때의 나를 꼭 닮았다. 당시 엄마한테 듣고 싶었던 다정한 말들을 나는 딸에게 자주 해줘야지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딸이 자라면서 내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 또 조심하려고 말이다. 자녀가 사춘기가 오니 내가 갱년기에 들었다. 과거 엄마도 그랬을 거란 걸 그땐 몰랐고 이제는 안다. 알아버려서 내 딸한테는 잘해주고 싶은데 괜스레 화부터 올라온다.


내가 딸이랑 고성을 내지르며 싸우면 남편이랑 둘째는 한턴 일을 멈추고 조용히 내 눈치를 본다. 네 멋대로 굴 거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딸한테 더 화를 내며 내 편을 든다. 어릴 땐 내가 애들 혼낼 때 같이 혼내면 애 기죽게 왜 그러냐 뭐라고 했었는데 이제 내 편 들어주는 남편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자녀교육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라고 했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딸과 내가 시간이 갈수록 사이가 멀어지는 게 보여서 이대로 독립시키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부모라면 뭐든 수용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던 때를 떠올리면 사춘기쯤이야 받아줄 수 있는 일인데 그게 참 어렵다. 부모의 자격 앞에 무너지는 비참함에 주말 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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