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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Apr 05. 2021

남편,그리고 나

남편의 친구 결혼식을 동행했다. 부부가 된 후로 남편과 결혼식을 함께 간 일은 가족 결혼을 제외하고 몇 안되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30대 초반에는 아이가 어려서 온갖 육아용품을 챙겨 출동(?) 해야 하고 공공장소에서 울거나 보채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남편은 못 견뎌했다. 집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돌봐주지만 밖에선 이상하리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남편의 행동에 거북 한일이 몇 차례 있었다.
또한 가지, 결혼식 뒤풀이에 마음 놓고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도 있었다.
술도 한잔 하고 남자들끼리의 대화도 나누고 해야 하는데 아기와 와이프를 동행하면 자유롭지 못하다는 그의 입장이었다.
결론은 혼자 가고 싶다는 그의 말을 덜 거북하고,  거절당한 게 아니라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괜찮은 척 보이려고 애썼던 그날들이었다.


뒤늦게 유부남 세계에 발을 들인 친구 덕에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외출이 이루어졌다.

남편의 친구들 중 몇 명은 낯설었고, 몇몇은 잘 아는 친구들이다. 거의 십 년 만에 본 남편의 친구와 악수를 나누며 반가움을 나눴다.
어떤 친구는 내게 낯선 그들에게
"인사해. OO 제수씨야."
"야! 이리 와 봐!  OOㅇ제수씨 오셨어!"
나는 그들에게 베일에 싸인 여인이었다.

조금은 어색한 공기를 예식 내내 품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며 낯선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그들이 토해내는 말에 나도 모르게 리액션을 하고 있더라.
옆에 앉아 묵묵히 밥을 먹는 남편은 간간이
추임새만 넣을 뿐. 어쩌면 내가 그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낯선 공기를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할까 봐 조바심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할 일은 한순간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주 만난 사이처럼 친근했고 왜 이제야 오셨냐고 환대해주었다. 부부동반 소모임을 하자는 얘기까지도.

남편은 자신이 뭘 할 때 가장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일하며 올라온 지금의 자리가 있기까지 쉼 없이 일만 했다. 좋아서 하는 일보다 '돈 되는 일'이어서 한 것이다.
마흔 중반에 이르러 사이드잡을 생각하는 그는 최근 들어 나에게도 심리적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땐 돈 버는 일로 가족을 품을 여유가 없었다. 품지 못하는 태도가 나한텐 때로 상처와 외로움을 주었지만
한편으론 자유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 잔잔바리 손길이 덜 가니 나도 삶이 여유로워졌다. 그 덕분에 책모임도 다니고 서울로 글쓰기 모임도 다닐 수 있었던 거다.

남편은 마흔중반이 되어도  자신만의 시간을 채우는 법을 잘 모른다. 집에 오면 유튜브를 켜놓고 침대에 누워 종일 나오질 않는다.
그나마 날씨라도 좋으면 자전거도 타는데
그럴 땐 혼자 가는 걸 싫어한다.
이 남자의 진심이 아직  궁금하다.

결혼 14년 차.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격한 발언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싸운 날이 참 많았다.
진심으로 이혼을 결심할 만큼 앞으로의 미래가 보이지 않은 날도 있었다.
서로 맞춰가며 사는 게 부부라는데 일방적인 맞춤만 요구하는 우리 부부 사이가 늘 위태롭게 느껴졌다.

결혼식을 다녀오고 거실에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었는데 둘째가 우리 곁을 맴돌며 한방을 날렸다.
"오늘 엄마랑 아빠랑 참 다정해 보이시네요."
아이들에게 그동안 보여주지 못할 일들을 넘치게 보여준 것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우리 원래 친해."

부부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에게 남편은?
남편에게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이 질문의 답을 가슴에 품고 살면 어떤 일에도
외롭거나, 상처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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