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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Mar 15. 2021

반장 따위가 뭐길래 내 딸을 울리냐

인생은 독고다이야 딸아~

"엄마, 나 조금 늦을 거 같아.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고 가라고 남으래."
등교 2주일 만에 무슨 일일까? 어제 아침 다그친 일로 풀 죽어 학교 갔는데 혹시 안 좋은 일이 또 생겼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오늘 반장 선거 나갔어. 나 바보같이 울었잖아. 짜증 나. 쪽팔려."
걱정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 준비도 안 한 녀석이 무슨 용기로 나갔을지 알고는 있지만 차마 얘길 꺼낼 수 없어서 집에 와 얘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밖은 비도 오고 속상해할 아이를 마중 나갔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을 것 같아 집 앞 커피숍을 갔다.
축 처진 모습에 어떤 말을 해줘야 되나 생각이 깊어졌다.
"선생님이 뭐라셔?"
"앞에 나온 것만으로도 용기 있는 행동이었대. 기회는 또 있으니까 기운 내래."

딸의 마음이 궁금하다. 왜 그렇게 반장, 부반장이 되고 싶은 건지.
다른 친구들이 발표하는 동안 발표할 내용을 급하게 적었는데 두줄밖에 못써서 속상했단다.
움찔하는 자기를 보고 반 친구들이 비웃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먼저 나와버렸단다. 자신의 행동이 창피해서 너무 속상했겠지. 학급 임원이 되면 자기가 인정받고 친구도 많이 생기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초등학교 마지막 생활인데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다고.
음료를 앞에 두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 속마음을 꺼내는 딸을 보는 내 마음도 무너진다.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데,
자존감, 자기 효능감, 성취의 경험이 적은 여린 마음의 이 아이에게 엄마로서 인생선배로서 본보기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에피소드가 앞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 나쁜 영향이 갈까 봐 조바심도 났을 것이다.
우선 아침에 다그쳐서 학교 보낸 일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 일이 자신감을 떨어뜨린 게 아닌지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작하는 일이 앞서 100프로 완벽히 갖춘 다음 시작하려고 한다면 준비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생각지도 않게 늘 용기 내는 게 사실 대단하다. 거기에 실수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가짐까지 준비되면 용기 내어도 좋겠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학급 임원이어야만, 리더여야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버리자고 말해주었다. 그저 나 존재만으로서 사랑해주는 연습을 많이 하자고 했다.

이날의 경험이 훗날 사회에서 트라우마처럼 작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린 완벽할 수 없고 때로는 혼자 짊어져야 할 무게도 감당해야 할 때가 무수히 많다. 그때가 언제인지 미리 알 수 없는 게 애석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란 것을 딸아이도 알게 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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