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를 낳던 그날, 차가운 침대에 진통이 느껴지는 채로 하반신 마취를 했다. 다리를 벌리고 누웠는데 하룻밤 나절 꼬박 진통으로 힘을 뺀 게 억울해서인지, 이제 다 끝났다는 해방감에서인지 모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바쁜 손놀림으로 자칫 위험할 뻔한 아이를 뱃속에서 꺼내어 내 가슴에 올려주었다. 쭈그렇고 하얀 몸을 보이며 잔뜩 웅크린 채 내 가슴에 안긴 아기를 보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울음 속 망설임이 2초 흘렀다.
"너구나, 내가 엄마야."라고 했던가? '엄마'라는 이름을 불러보기만 했지 방금까지 내 뱃속에 있던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러봐'라는 식으로 나를 알리려니 무척 낯설었고 계속 눈물만 났다.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은 엄마와 대체 무슨 감동 사연이 많아서 그런 걸까 궁금하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눈물이 그렁거리진 않았고 나만 챙겨 받지 못한 사랑에 야속함만 그득했기 때문이다.
' 못난 것 같으니. 아이 둘씩이나 키우는 엄마란 사람이 고작 내 엄마를 생각하는 수준이 고작 이 정도냐.' 스스로 채찍질하며 수년간 괴로웠다.
현재 방영되는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미처 해결되지 못한 내 묵은 감정을 방송을 통해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어서다. 엄마와의 감정, 내 아이와의 감정에서 서로 미숙했던 부분을 눈물로 씻어내는 중이다.
엄마를 극도로 거부하는 아이가 출연했을 때다. 동생과 비교하고 차별해서 엄마가 싫다고 했다. 청개구리처럼 엄마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자신을 향해 웃어주지 않고 지적하고, 쌀쌀맞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기한테 필요 없는 존재로까지 여겼다. 그 엄마에게 오은영 박사는 어릴 때 엄마와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물었다. 엄마는 잠깐 머뭇하더니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멀티탭 같은 걸로도 맞고요."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작은 상처 하나로도 켜켜이 쌓여 순간 툭 튀어나와 자기 일상을 흩트려 놓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방식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의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했다.
지나간 과거를 들춰 이제 와서 어떡하라는 거냐고 오히려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했고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도 그땐 엄마 자신을 몰랐겠구나, 힘들었겠구나,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과 엄마의 방식이 서로 다른 거였구나 이해하기로 했다.
지금도 엄마의 이해하기 힘든 말에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첫째를 낳던 날의 분만실 공기를 떠올리기로 했다. 내가 어색하게 머뭇거리며 아기한테 건넸던 "내가 엄마야"라고 했을 때 아기는 처음부터 안정감을 받았을지. 늘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대물림된 것 같은 딱딱한 어조의 내 말투 때문에 딸이 상처 받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첫 시작이 서툴러서 그랬는지 엄마라는 중압감은 내 뒷모습을 어떻게 채워 보여줄지 버거울 때가 많다. 내 딸도 나한테 다정하게 이름 불려지고 늘 웃어주고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화내지 않기를 바랄 텐데 이 모든 걸 내가 다 하고 있다. 내가 엄마한테 바라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었지.
그러나, 결코 내 아이한테만은 슬픈 감정을 물려주어선 안된다. 릴랙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릴랙스뿐이다. 반응하기 전에 1,2,3 호흡 한번 하고 천천히 아이 말을 복기하며 무슨 얘길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건지 함께 알아가기다. 그렇게 나는 느슨하게 만들면 아이도 내 빈틈을 요리조리 찾아서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겠지.
완벽한 엄마, 완벽한 어른이 되기보다 익어가는 어른과 엄마가 되고 싶다. 어느 날 아이 일기장에
'우리 엄마는 화를 진짜 잘 냈었는데 요즘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웃어줘서 너무 좋다.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