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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May 12. 2021

고민한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내게 이런 핑계를 대지마

불을 켠 채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남편이 잠에서 깨지 않았었다면 마치 4시에 일어나 이른 하루를 시작한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남편의 잔소린 달갑지 않으니까.


불도 못 끄고 잠든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느닷없이 울컥거렸다. 한참 글쓰기 훈련 중인데 오감을 이용한 글을 쓰는 차례였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만큼은 아니었고 책을 다시 읽으며 그동안 썼던 글 중 하나를 먹잇감으로 내놓을 셈이었다. 어떤 놈을 꺼내 재탄생시킬까 고르다 포기하고 며칠 전 딸아이가 한 말이 체한 듯 계속 마음에 얹혀 있어서 요리 재료를 급 변경해버렸다.


일단 훈련내용은 '오감을 살리는 쓰기'다. 구체적으로 글쓰기가 되겠다.  이건 저번 합평 모임에 참여했을 당시 엄청 지적받았던 부분 아닌가.

참담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오늘은 손가락이 키보드에 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싶었다. 이럴 땐 잠시 기분전환이 필요한데  오후 햇볕이 뜨겁지만 나가서 걸어볼까, 운동하느라 멀리하는 믹스커피를 진하게 아이스로 한잔 타서 마셔볼까, 혼자도 자기 할 일 잘하고 있는 세탁기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모르겠다.


시험공부하는데 커닝 페이지  만들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숙제는 하지도 않고 이미 찜찜한 마음 한가득이다.


이 전 기수 멤버들의 글을 훑어봤다. 이건 내 영역이 아니올시다 다. 읽으면 아~ 이렇게 쓰는 거구나 알겠는데 막상 내 머리와 입과 손은 협응이 안되고 있다. 보이는 사물과 상황을 맛있게, 상상하며 읽히게 쓰고 싶지만 안되는 걸 어쩌나. 들숨 날숨에 시간은 계속 흐르기만 한다.


고민 끝에 체한 듯 걸려있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구체적으로 쓰려고 하니 막히는 구간이 숨이 차오른다.

에라 모르겠다. 제출해놓고 자기반성 댓글도 빠지지 않았다. 늘 오징어 같은 글이라고 자책하는 내가 이 날처럼 싫은 적이 없었다.


어떤 오감을 이용했냐는 질문에 멈칫거렸다.

내 글은 시각만 적용되었다. 미션 실패는 아니지만 미션에 대한 이해를 못 한 것 같았고 내 감정에 빠져 주변을 아우르지 않고 쓴 내 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솔직하게 날것으로 쓰는 게 읽는 사람에게 전달이 잘될 거라는 판단을 가진 나다.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말고 다만 진심과 진솔함을 보이는 글을 쓰는 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쓰든 틀린 글은 없다. 지적받았다고 움찔거릴 거였다면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 글에 대한 방향성도 취향도 없이 막 쓰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셀프 위안을 삼자.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도저히 편안한 밤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려고 책을 한 권 들고 누웠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에서 '어디까지 묘사할 것인가'를 읽었다. 역시 이론적 습득은 쉬우나 결론은 '매일 훈련'이라는 것.


잠시 유익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는 불도 안 끄고 잠든 내가 하룻밤 지나고 나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뭐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자아도취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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