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카피라이터>를 읽고 있다. 카피라이터 정철님의 신간이다. 그동안 책 쓰기, 글쓰기 관련 책이라면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강원국 작가님 대통령의 글쓰기, 송숙희 작가님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당신의 책을 가져라, 나탈리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김민식 pd 매일 아침 써봤니, 이권우 선생님 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작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글쓰기에 대하여. 뭐 이 정도? 읽어봤다. 아, 이하루님의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이유미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가장 최근에 김선영 작가의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 까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살림하는 전업주부가 글이란 걸 잘 쓰고 싶어서 나름 유명하고 좋은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구입을 했다. 위에 읽은 책 말고도 아직 첫 장도 넘겨 보지 않은 책들도 집에 많다. 이번 정철님의 책은 안 살 이유가 없었다. 그건 바로 두 달 동안 '아바 매 글'이라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활동을 하며 글밥 코치를 만난 이유였다.
'아바 매'활동에서는 매일 글을 썼다. 끌리는 제목 짓기, 문장 이어 쓰기, 고쳐쓰기, 자유 에세이 등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훈련했다. 글밥 코치님은 위에서 언급한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라는 책을 쓰신 작가님이다. 방송작가 경력이 있고, 현재는 글쓰기 코치로, 강사로, 작가로 활동하신다.
글밥님의 책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읽었는데 그동안 혼자 글쓰기, 퇴고를 하며 겪었던 문제를 책에서 다 얻을 수 있었다. 초보자라면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과 훈련 메시지를 잘 담은 책이다. 그런 책을 쓰신 분이 정철님의 이번 책 <누구나 카피라이터> 추천사를 쓰셨다. 추천사 마저도 내 스타일이었다.(거의 글밥 바라기 수준)
책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책을 읽기 전, 정철님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책을 읽은 적은 없었다.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라는 주제로 유튜브 강연으로 처음 뵈었는데 사람이 참 소탈해 보였다. 동글동글하고 말씀도 느릿하면서 귀에 잘 들어오는 목소리를 가졌다. 왜 진작 이분을 몰랐을까, 어서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예스 24에서 예약을 해놓고 바로 구입. 카피라이터가 쓴 책이어서 그런가. 서문부터 기존의 책과는 다른 구성이다.
게다가 생각이 글이 되는 과정을 생중계한다는 카피가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정말 이렇게 가도 되겠어? 너라면 이런 카피 썼겠어?
이만하면 됐어, 라는 말 함부로 내뱉지 말라는 뜻입니다. 쉽게 만족하지 말고 더 치열하라는 뜻입니다. 끝까지 치열하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카피라이터, p37
정철님이 한 광고회사 자문위원으로 일할 때인데, 자문위원은 짜인 카피를 전문가 자격으로 의견만 제시하면 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상도 지역의 슬로건을 살피다가 카피라이터 촉이 발동한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날따라 오지랖이 나선 것이다. 그 일을 책에 소개하며 끝까지 치열하라고 쓴 문장이 또 한 번 내 생각 주머니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엊그제 본 드라마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왔었다. '슬의 생 2'에서 채송화 교수가 전공의에게 했던 그 말.
-그렇게 의심한 건 잘했어. 근데, 너 그거 빼곤 네가 잘못했어. 네가 잘못한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펠로우 선생님한테 정중하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싸울 의도는 아니었는데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커졌어요."
-아니,...... 더 싸웠어야지. 니 판단이 맞다 생각했으면 밀어붙였어야지. 네가 옆에서 계속 지켜봤잖아. 네가 제일 잘 알아 그 환자분에 대해서. 그럼 니 판단을 믿고 더 싸웠어야지.
환자분 만약 잘 못 됐으면 그거 너 때문이야. 너 망설이고 우유부단했던 시간 때문에 환자 상태 더 나빠진 거라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환자 봤으면, 치열하게 싸워. 그래야 환자 살려.
안 그래도 이 대사 부분에서 나는 글쓰기를 떠올렸는데, 이건 나를 향한 말이야. 나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워서 글을 쓰라고 던지는 팩폭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도 "끝까지 치열"하라고 하니 글을 안 쓰고는 못 배기겠네.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 질투하고 시기하는 옹졸한 마음만 앞선 나란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려는 <누구나 카피라이터>.
우연히 책과 드라마 대사의 묘한 겹침은 나한테 하는 말 같다.
"네가 잘 못 했어. 더 썼어야지. 더 치열하게 고민 했어야지. 더 글과 싸웠어야지."
그동안 쉽게 만족하려고 했었던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눈 가리고 아옹하려던 나였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래 놓고 매일 안 쓰면 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