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원고를 작년에 1차 투고한 뒤 큰 성과는 없었다. 몇 군데 자비출판 제안이 왔었고 어느 출판사에서는 원고량을 조금 늘려서 다시 보내주면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자신이 없었다. 일단 벌여놓긴 했는데 갑자기 밀려든 회의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3개월가량 지나고 다시 퇴고를 시작했는데 도저히 내 글을 읽을 수가 없더라. 소제목과 내용이 겉도는 느낌이랄까. 어디부터 고쳐가야 할지 난감해지니 손을 놓고야 말았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도 전혀 위로되지 않았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서 글 합평 모임을 찾게 되었다. 비전문가들과 함께인 모임에서는 취미로 글을 쓴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실력이 출중하여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부럽기만 했다. 모임에 참여한 이유를 나한테 글 쓰는 달란트가 있는지 찾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는데 차라리 나도 심심해서 써보려고 한다고 말할걸 그랬다. 숨고 싶을 때가 많았다. 너무 일기 같은 글이었고 문장 단위 주제가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얘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글이었다. 도대체 초고 80장은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퇴고할 때 복잡한 글을 수정하려니 힘이 들 수밖에.
책 쓰기와 관련된 글은 아니지만 오소희 작가님의 <엄마의 20년>에 딱 나를 얘기하는 글을 찾았다.
"꾸준히,
중간에 회의감이 들 때도 꾸준히.
벌여놓은 일이니 잡념 없이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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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다가 말았어도, 자격증을 준비만 하다 그만두었어도, 중도하차한 사람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과 달라요. 실패담이라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실패담조차 없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니까요."
그래 맞다. 꾸준히. 벌여 놓은 일을 뒤로하고 그동안 딴짓, 딴생각으로 아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은 계속 시도하면서 겪은 실패담이 누군가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게 도움될 이야기가 만들어질 또 하나의 글감이 나오니까. 나는 늘 글감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포기하려 했었고 나태하게 굴었지만 글 합평 모임을 왜 시작했으며 글쓰기에 관한 책을 보며 연습하는 나는 뼛속까지 글쟁이가 분명하다. 그렇게 믿으며 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일기처럼 '나'중심의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노력하는 자를 천재가 못 이긴다고 곧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쓸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