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간에 유구무언을 외치다

by 책사랑꾼 책밥

오늘도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온라인 수업 중이다.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둘째의 수업에 차질이 생긴 것을 알아차린 것은 이 대목이다.

"야, 왜 너희들끼리만 얘기하니? 내 얘기 들리니?"

무슨 수업이길래 그럴까.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소회의에서 아이들끼리 조별 토론을 하는 모양이다. 읽던 책을 잠시 덮고 귀를 더 열어봤다.


"야, 나는 유구무언이다."

내 딸의 한마디다.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자기들 대화에 빠져있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한 아이가


"야, 너 말하고 예서 말하고, 그다음 나다. 알았지?"

드디어 차례가 정리되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구구단 게임을 하는지 곱셈 답을 차례로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중간중간 딸아이는 끼어들 틈을 못 찾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또 자기들끼리만 심취하는지 "얘들아. 얘들아?" 하더니 소리를 꺼버렸다.


방에 들어가 볼까 망설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연히 수업시간이고 내가 간섭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번 국어수업 때 자신 있게 발표하고 싶은 내용을 발표 못해서 눈물 흘리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아이들끼리만 얘기하고 자긴 유령 취급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아직 아이와 얘기 나눠보지 않았음)


그러던 중 "나는 유구무언이다."라고 했던 말이 왜 이렇게 웃기고 귀여운지. 그 한마디 던졌을 때 아이들이 1초 조용했었다. 그리고 딸은 부연설명을 했다.

"나 유구무언이라고. 아무 말하지 않겠다고. 너희끼리만 얘기하잖아."


무심하지만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한 셈이다.



수업이 한 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딸이 무사히 수업을 마쳤으면 좋겠다. 단 끝까지 침묵은 지키지 않았으면 한다. 할 말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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