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광년이가 된다
어느 못난 어미의 고백
차를 몰고 무작정 나왔다. 목적지도 없다. 일단 차를 타고 핸들을 돌리다 보면 생각이 나겠지.
집을 빠져나와 좌회전이냐 우회전이냐 고민도 안 했다. 집에서 멀리 벗어나 보자고 생각뿐이었다. 아예 고속도로를 타 버릴까? 생각도 들었는데 차마 그것까진 못하고 옆동네 스타벅스 앞을 지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샀다.
시골길을 따라 이정표를 보며 일단 액셀을 밟았다. 흥분된 마음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는데 따라오는 차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데는 아이와 크게 한바탕 한 일 때문이다.
이놈의 욱. 욱하는 성질 때문에 오늘도 아이를 크게 잡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던지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로 목구멍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겁에 질린 아이 얼굴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그 순간에 나는 가정폭력범이었다.
자기 물건을 챙기는 일에 서툰 아이는 나한테 걸리면 혼날까 봐 가끔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도 바로 말하지 않는다. 보나마다 엄마가 미간을 좁히고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도 서늘한 내 어투.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숨겼다가 말하기 좋은 타이밍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 말을 들어주기보다 일방적인 화를 부리고도 흥분이 안 가라앉아서 집을 나와버렸다.
40분쯤 운전을 하고 어느 저수지 앞 카페거리가 보여 차를 길에 잠깐 세웠다. 도저히 내가 아이한테 저지른 행동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엄마 인지 앞으로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려면 어떤 것부터 시도해야 좋을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사건의 발단부터 얘기를 했다. 언니는 아이보다 내 상태를 점검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문제 있는 아이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부모의 무지에서 오는 실수를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충돌이 생기면 입을 꾹 다무는 아이 행동이 나를 미치게 한다. 혼나지 않으려고 거짓말하거나 문제가 될만한 일을 숨기는 행동이 들통났을 때 아이의 처신도 화가 난다. 빨리 대답해보라고 몰아세우는 엄마를 아이도 버거웠을 것이다. 화가 날 때 '네가'라는 말로 죄책감을 갖게 하지 말고 '엄마는~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너의 말이 듣고 싶어'식의 '나 화법'을 써보라고 조언해줬다.
실컷 언니한테 얘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어갔다. 이 와중에 얼마 전 사 왔던 복숭아를 몇 개 못 먹었다고 아쉬워했던 아이 말이 생각나서 길가에 파는 복숭아를 한 봉지 샀다. 조수석에 곱게 놓인 복숭아를 보면서 또 눈물이 났다.
제일 좋아하는 딱딱이 복숭아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날 때면 나도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안 했었다. 말 안 한다고 엄청 혼났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이 내 딸한테 내가 그러고 있는 건가.
내 마음을 말로 하는 방법도 가르쳐줘야 하는 것 같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인 엄마도 아빠도 상처 주지 않고 아이를 대하는 말하는 법을 공부해야 한다. 우린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는 법, 엄마 아빠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이날 광년이 짓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문을 여니 아이들이 걸어 나오며 인사를 한다.
"다녀오셨어요."
하아...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또 눈물이 난다.
벌게진 눈을 세수로 애써 씻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