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by 김진수 밀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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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사 주고 싶어도 절제하십시오.
자녀가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자녀가 필요한 물건을 요청해도 금방 사 주지 말고 조금 시간을 두었다가 사 주어야 합니다.
이 때 자녀는 만족의 지연도 배울 수 있고 진정한 감사도 배울 수 있습니다.

- 이기복 교수 / 정선애 <진짜 엄마 준비> 중에서

무조건 주는 것이 사랑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기 전에 그 충족을 채워주면 부모로서 아주 잘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 질문이 없게끔 완벽하게 앎의 충족을 시켜주는 것이 다 인줄로만 착각하며 살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순간 얼음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 링컨의 한마디는 그 뒤로 아이를 대하는데 크게 작용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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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바로 그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 링컨

사랑한다는 이유로 대신해준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오히려 그것이 상대방을 위해 가장 나쁜 일이 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 왜 나쁜 일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문제였고, 그로 인해 대신해줌으로써 상대방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기다려주기로 했습니다. 이기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이가 걷기위해서는 수많은 스스로의 넘어짐이 요구되듯이 사랑에도 수많은 절제의 미덕과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즉시 반응하지 않고 절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하는 이유를 비고츠기의 근접발달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근접발달기는 어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학습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아이는 편안한 상태에서 지식을 갖춘 성인의 도움을 받으며 학습에 임할 때 가장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
- 비고츠기(심리학자)

아예 무시한다는 것이 아닌 가장 성장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 적절한 시기에 반응해줌으로써 기다림도 배우고, 절제도 배우며, 성장의 느낌까지 받을 수 있는 근접발달기! 이것은 부모인 제가 아이를 바라볼 때 가져야할 핵심 덕목이라 여기는 부분중 하나입니다.
답답할 때가 많지요. 생각대로 안 움직여 줄때가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마다 STC 버튼을 끊임없이 누르곤 합니다.
- Stop 멈춰라. 즉각 도와줘서 기회를 박탈하지 말고 기다려줘라.
- Think 생각하라. 아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 Choose 선택하라. 아이에게 어떤 것이 더 성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선택하라. 즉시 도와주면서 앎의 즐거움, 탐구의 즐거움, 성장의 기회, 실패의 기회를 빼앗을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 삶의 노하우를 스스로 터득하며 '아하'를 외치도록 도와줄 것이냐는 매우 중요한 선택적 문제이다.

식당에 가면 어른들의 식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게끔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저도 물론 활용을 잘했고요.^^;;) 아이들은 열심히 보고, 그때 어른들이 식사를 즐겨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하지만 영상이 중간에 끊긴다든지, 영상을 마저 보지 못했는데 어른들이 식사가 마쳤다는 이유로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면 그동안 조용했던 아이들이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식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한 영상이라는 매개체는 어느 순간 분위기를 앗아가는 것으로 돌변하는 장면중 하나 입니다.
아이들은 점점 영상에 빠지게 됩니다. 평상시 뇌에 흐르는 전류, 즉 뇌파는 3 헤르츠에 불과하는데 영상, 게임이 주는 뇌를 자극하는 헤르츠가 35나 되니 이것을 절제하기가 쉽지만은 아닐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아이들의 절제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는데 한 예로 클릭을 하고 바로 화면이 넘어가지 않으면 기다리기 보다는 뒤로 버튼을 계속 눌르는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단 아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니겠지요.
즉각 반응을 해야만 하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처절한 기다림과 절제의 미덕이 요구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됩니다.

스티븐 잡스의 연설문을 암기하면서 그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Biological Mother"
생물학적 어머니라는 표현을 합니다. 자신을 낳고 입양시켜준 어머니를 빚대어서 표현한 것이죠.
저는 이 단어 하나에서 진짜 부모는 무엇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낳아준 부모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면서 세상속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조력할 것인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믿는 대로' '기다리는 대로' 커가는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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