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어린 톨스토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톨스토이, 뭘 그리고 있니?"
주변 어른이 하나 둘 몰려오며 묻더니, 그림을 보며 크게 웃었다. 빨간색으로 토끼를 그려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얘야, 세상에 빨간 토끼가 어디 있니?"
그러자, 톨스토이는 당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는 없지만 제 그림 속에는 있어요."
- 김종원 <부모 인문학 수업> 중에서
"어머니! 어머님 께서는 이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시나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요."
"그 평범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글쎄요. 부모,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가정 가꾸면 그것이 평범한 것 아닌가요?!"
"그것이 아이가 원하는 삶인가요?"
"아이가 원하는 삶이요? 아직 아이들은 어려서 그런 생각도 못할 거예요. 그래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평범한 방향과 가치있는 방향을 선택해야 될때는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저는 그저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이런 비슷한 뉘앙스로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곤 합니다. 아이에 대한 상담은 결국 학부모님 본인 자신에 대한 상담으로 전이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20분 상담을 예상했던 것이 2~3시간은 훌쩍 넘어가기가 일쑤입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세계 VS 어른들의 세계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 고유만의 세계가 분명이 있습니다. 교실에 28명의 아이들이 있지만 모두 다 다른 생각,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저를 비롯한 어른들은 똑같은 하나의 형태를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지 '통제'라는 것을 활용하여 아이들의 사고와 에너지를 가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톨스토이의 예화만 봐도 그의 그림속 의미는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 즉 어른의 의미로만 다가가니 톨스토이에게 한방 먹은 것이지요.
교육이 그 한몫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교사의 질이 높아지고, 학교 시스템의 질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자아(직업)를 넘어 세상을 향한 진정한 사랑(인류애)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해진 틀 안에서 아이들의 사고를 가두는 경향이 많습니다.
평가의 체계가 아무리 다각도로 되어지는 노력을 해도 가르치는 교사의 사고가 판이 바뀌지 않으면 아래와 같은 형태의 사고를 주입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진행중이지요.
박웅현 작가님의 <여덞 단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교육은 '네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한다면 한국 교육은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했습니다.
바깥에 기준점을 세워놓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고유의 무엇을 끌어내는 교육을 이야기한 것이죠.
이글을 읽고 한참 동안 바라보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내 안에서 넣어야 될 것과 빼야 될 것이 무엇인가?'
'아이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보석을 어떻게 알게 할 것인가?'
'내 안에는 어떠한 보석들이 숨겨져 있을까?'
등 다양한 물음표들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인젠리의 <좋은 엄마가 좋은 선생님을 이긴다>(인성편, 공부편) 을 꺼내들어 탐독했습니다.
마음을 다잡는 문구들이 한가득 다가왔습니다.
몬테소리의 교육 이론과 교육 방법의 기본 규칙은 아이의 적극성을 방해하는 행동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 존중하고, 잠재력을 개발해서 아이가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게 돕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교육학자인 홈스는 말했다. "몬테소리 이론 체계의 훌륭한 점은 그녀가 다음과 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닌 곳에서 아이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없을뿐더러 유익한 연구를 할 수도 없다.!"
아이의 성장은 탐험하듯 함께 하는 것이다.
부모가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쓰면 아이에게 남다른 추억과 신비로운 일상을 선물할 수 있다. 아이는 천사이고 천사의 세계에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천사의 경험을 선사해야지 아이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날개를 달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아이의 의지를 동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가장 큰 실수는 성인의 통속적인 관념으로 아이의 정상적인 행위를 나쁘게 보고 인위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아이를 몰아넣는 것이다.
부모는 맑은 눈으로 아이를 대하고 건강한 신념으로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성격과 행동에 차이가 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끊임없이 어른에게 '쓰레기 사고'의 침해를 받기 때문이다. 쓰레기 사고는 마치 기업이 생산량을 높이는 것만 신경 쓰고 유독가스와 오염된 물을 멋대로 배출하는 것과 같아서 아이 본연의 순수하고 깨끗한 세계를 서서히 오염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아이의 이성교제를 포함한 다방면의 쓰레기 사고는 아이를 '돌연변이'로 만든다.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는 데 반드시 '실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이가 생활 속에서 직접 얻은 경험과 교훈은 부모가 백 번 말한 이치보다 인상이 더 깊게 남는다. 실수는 성장할 때 반드시 받아야 하는 수업니다. 이 수업을 받으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아를 완성하는 능력이 생긴다. 부모는 실수의 가치를 이해하고 아이가 성장하는 데' 실수'와 '성취'가 교육적으로 똑같은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를 이해하려면 장점만 칭찬하지 말고 단점을 잘 대해야 한다. 늘 뉴턴을 보는 눈으로 아이를 보면 아이가 점점 뉴턴을 닮아간다.
"세상에 아름다움은 부족하지 않다. 다만 부족한 것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다."는 말이 있다. 만약에 시간이 부족해서 아이가 잘 한 일을 공책에 기록할 수 없으면 적어도 마음에 칭찬 기록장을 만들자.
"인성은 운명을 결정하고 인성은 유년 시절에 형성된다. 부모가 사소한 일을 큰 일처럼 여기고 모든 일에서 올바른 관점과 방법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의 인성은 유년 시절에 받은 상처로 잘못되지 않는다."
왜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학원에 가는 것인지를 고민해봅니다.
뭐라도 하나 배우게 하려는 것이 (부모님만의) 목적이라면 안가는 것이 더 좋다고 여깁니다.
두부부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면 아이가 학교에 돌아와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간구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이미 내면에 고유의 보석이 있는데 그것을 자꾸 밖에서만 찾아서 넣어주려고 하니 아이들의 내면은 포화 상태가 되어 원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자꾸 거부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보다는 배움의 괴로움을 알려주는 격이니 생각만큼 아웃풋이 나오지 않아 부모의 마음도 잃고 동시에 아이의 마음도 잃는 형태의 교육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교육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은데 너무 오버해서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여깁니다. 물론 아예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원하면 사교육도 교육의 일환이 될 수 있기에 저는 옳다 나쁘다 이분법적인 조언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교육의 주체인 아이의 의사가 그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여길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철저히 고3 수능을 마치면 동시 다발 적으로 배움에서 손을뗍니다. 저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행태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제도적 배움에서 힘든 공부를 했다면 이제는 정말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를 가져본 적도, 들은 적도, 본적도 없으니 모두 다 하나같이 노는데 집중을 합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요^^;;)
저는 20살로 돌아간다면 마음껏 책을 읽고, 마음껏 여행도 다니는 등 지금에서야 느끼는 삶의 여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는 그때에 충실했습니다만 정작 삶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던 그때였기에... 만약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방향을 틀어 나아간다면 인생은 물음표 보다는 느낌표로 가득찰 것입니다.
아깝게 흘러간 시간들을 보면서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잘 맞이하면 되니까요.
이때는 이것 저것 재는 '어른의 의미'가 아닌 순수하게 자신만의 고유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아이의 의미'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너는 왜 인생의 그림을 이렇게 그리냐?'라고 묻는다면 톨스토이처럼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없지만 제 그림 속에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