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견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아침에 전화해서 깨워줄래?"
...
"알람 맞춰 놓고 자면 되지, 왜 전화를 해야 해??"
연애 때의 일이다. 나는 여자 친구와 다른 도시에 살았고 주로 주말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해 만나야 했다. 거리가 있다 보니 만나지 못할 때에는 주로 전화로 했다. 대학 CC였기 때문에 학기 때는 문제가 없으나, 방학 때는 2~3주에 한번 정도 꼬박 서울에 올라와야 했다. 만남 직후는 분위기가 좋았으나, 좋았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빠지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다툼도 늘었다. 언젠가는 데이트 후 여자 친구의 기분변화를 그래프로 기록해 보기도 했다(장난이지만 당시엔 꽤 진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물리적 거리가 있으니, 심적으로 더 다가가려 했어야 했고 당시 그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인정하려 노력했어야 했다. 당시 난 합리적이려 했을 뿐 공감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는 나에게 "아침에 전화해서 깨워달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난 "알람을 맞춰놓으면 될 일을 왜 내가 전화를 해야 하나?" 란 식으로 반응했다. 이유를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렇다 보니 다툼이 잦았고, 그럴 때마다 난 이성적이려 애썼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억측과 감정질도 많았다. 그런 나에게 여자 친구는 져줬고, 동의해 줬다. 후배로서 그래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당시 우리 둘 사이엔 공감이 약했다.
......
그런 그녀와 이젠 결혼 18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젠 설명보다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서로 많이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MBTI로 정 반대 성향이지만 자연스럽게 다툼도 적어지고 대화 시간이 늘었다.
연애처럼 회사나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모두 사람에 대한 것 아닌가. 특히 상대와 대화 도중 우려나 반대의견을 접할 경우가 많다. 이때 상대에 대한 "인정과 공감"은 무드를 좋게 만들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좀 더 구조화시키면 일상에서 활용하기 수월해진다.
반대의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
[C-ARC]
상대와 의견이 달라 효과적인 극복이 필요하다면 몇 단계의 절차를 알고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단계는 비즈니스 상황에서 특히 잘 적용되어서 활용가치가 높은 것 같다.
첫째, 명확히 하기(C-Clarify) 단계이다. 이 단계는 상대의 우려(concern)나 반론(objection)을 명확히 하는 단계이다. 경험상 상대가 뭔가 불편한 얘기나 내 의견과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면, 우린 곧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받아칠 준비를 한다. 내 입장과 의견을 주장해 디펜스(수비적 입장)하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내 생각과 입장보다는 상대의 우려가 무엇인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문제점을 뭐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래서 현재 어떤 감정상태에 있는지.. 조금은 냉정하게 사리분별이 필요한 단계이다.
둘째, 인정하기(A-Acknowledge) 단계이다. 상대의 입장과 우려를 자세히 파악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낸 다음엔 상대가 얘기하는 우려나 반론에 대해 인정해 줘야 한다. 이 단계는 상대와 심리적 안전지대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꼭"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생략된다. 사람은 이성과 감정을 모두 지닌 존재다. 감정을 좋게 형성하면 대화가 더 잘 풀리고 원활할 수밖에 없다. 나는 마음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는데, 상대가 받아줄 생각은 안중에 없고 디펜스 할 생각뿐이라면 관계는 좋게 발전할 수 없다.
셋째, 반론 극복하기(R-Respond) 단계이다. 상대가 이 문제로 느꼈을 불편함을 인정하며 심리적 안전지대를 형성하더라도, 100% 동감할 필요는 없다. 이땐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신뢰감 있게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비즈니스 상황이라면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자료, 데이터)나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토대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기존 불편하던 인식을 좀 더 긍정적 인식으로 변화시킬 기회가 된다.
넷째, 확인하기(C-Confirm) 단계이다. 상대에게 나의 생각을 전한 후에는 반듯이 처음의 우려나 문제에 대해 변화된 인식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긍정적인 방향으로 합의점을 찾았다면 다음의 후속 행동을 약속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음에 좀 더 좋은 분위기에서 더 신뢰성 있게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반대 의견을 "인정"해주면
상대가 존중받는 느낌이 드는 이유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의하면 사람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 안전욕구 - 소속욕구 - 존중욕구 - 자아실현 욕구] 단계로 발전한다. 상대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느낌이 상대로부터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아래의 피라미드를 보면, 안전욕구(safety)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와 더불어 가장 기본적인 욕구(basic needs)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그 후로 친구나 주변인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회적 욕구로 발전하고 그다음 존중과 인정 욕구로 발전한다.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 공감해 주려는 노력을 통해 "당신을 존중하고 있어요"라는 암묵적 소통이 만들어진 것이다.
고객의 반대의견(objection)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심리기제를 잘 알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보통 상대가 불만을 제시하면, 그 불만이 어디에서 왜 생겼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상대가 어떤 불편감을 느꼈고 그래서 지금 어떤 상태인지 호기심을 갖고 감정이나 정서를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려 뜨리지 못한다면 당신이 아무리 이성적으로 옳은 얘기로 설득해도 설득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코칭 개념으로 확장해도 상대에 대한 인정과 공감은 시사점이 있다. 코칭에서 코치는 코치이에 대한 존중, 성장가능성에 대한 믿음, 목표제시와 피드백, 관점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결과 코치이에 대해 격려와 지지의 마음이 전달되어 높은 주도성을 형성하고 그 결과 성과에도 높이 관여한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특히 "존중", 성장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성과에 더 높이 관여한다(윤덕수, 2019).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이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참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이성의 영역에 치우쳐 마치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처럼 간다면 Win or Lose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Win & Win의 관점에서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깊이 인정하고 공감할 때 더 좋은 해결책이 생길 것이다. 아무리 당신의 주장이 옳더라도,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Reference
윤덕수 (2019). 상사의 코칭리더십과 주관적 경력성공의 관계. 연세대학교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