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저자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 또한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쓰였고, 이후 작가 자신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베케트가 47세였던 1952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1953년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영국의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은 이를 ‘부조리극’이라 명명했다. 작품 속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베케트는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 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만큼 은둔적인 인물이었다. 이혼이나 스캔들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주요 등장인물은 고고(에스트라공), 디디(블라디미르), 포조, 럭키다. ‘고도’라고 하면 ‘높을 고(高)’와 ‘길 도(道)’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작품에서 ‘고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극은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대는 시골길과 나무 한 그루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배경이다. 시간은 저녁이다. 1막에서 고고가 구두를 벗으려 하고, 디디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고고는 계속 구두 속을, 디디는 모자 속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본다.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13쪽) 디디의 이 말은 인간 존재의 모순과 책임 회피를 꼬집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고고와 디디라고 부르며 부둥켜안기도 하고, 당근과 순무로 허기를 달랜다. 그들이 나무 앞에 머무는 이유는 바로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고, 대신 목에 끈을 맨 럭키를 몰고 포조가 등장한다. 포조는 짐꾼 럭키에게 채찍질을 하며,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고도 밑에서 일한다는 어린 소년이 나타나 오늘 고도가 오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2막은 고고와 디디가 밤을 지낸 뒤,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서로 반가워하면서도 어제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지만, 기다림은 반복되고 두 사람은 자살을 고민하기도 한다.
“기분이란 건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없는 건가 보다. 낮에는 종일 기분이 좋았거든. 간밤엔 한 번도 깨지 않았으니까.”(99쪽) 디디의 이 대사는 마치 ‘섬망’ 증상처럼 느껴진다. 해가 지면 불안해지는 노인성 질환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모자를 바꿔 쓰거나, 포조와 럭키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등 반복적이고 목적 없는 행동은 치매 증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제 만난 포조와 럭키가 재등장하지만, 포조 역시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는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150쪽)
포조는 하룻밤 사이 장님이 되었고, 이내 무대를 떠난다. 소년도 다시 왔지만 고도는 오지 못했다.
고고와 디디는 반복적으로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고, 앞에 놓인 물건을 만지작거리거나 들었다 놓는 행동을 계속한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노화로 인해 지남력과 기억력이 저하된 노인을 연상케 한다. 밤과 낮의 구분이 흐려지고, 자신이 기다리는 존재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해지는 상태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실존하지 않는 외부의 인물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해 주는 관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부조리극’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생의 무의미, 반복되는 일상, 희망 없는 기다림, 이 모든 것은 실존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단지 관념적이지 않고, 너무도 현실적인 ‘노년의 되풀이된 삶’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씁쓸했고,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
한 줄 평 : 고고와 디디에게 ‘고도’란 결국 서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