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서울에서, 다시 서울로

by 별하늘

[나눌 이야기 : X세대 맘의 자아실현]



1990년대에는 해시태그 개념이 없었다. 지금은 키워드 앞에 붙는 #기호가 주제별 검색을 쉽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내가 처음 #기호를 접한 건 고등학교 수학 시간이었다. 수학 문제 번호 앞에 붙은 기호였다.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 부임한 20대의 젊은 수학 선생님은 문제 번호 앞에 꼭 샾 기호를 붙였다. #1, #2... 별표나 밑줄보다도 강렬한 인상이었다. “#1”이라고 적는 순간, 이 문제는 반드시 풀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기곤 했다.

그 시절의 나를 해시태그로 표현하자면, '#수학잘하는문과생' 정도가 되겠다. 물론 수학 점수가 인생 전부는 아니기에, 그 재능을 계속 살려나가진 못했다. 어쩌면 나는 내 장점을 살리지 못한 채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주부로 살면서 #기호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나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갔다. 결혼과 동시에 탈서울을 한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혼하면 주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서울을 떠나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자녀를 남에게 맡기고 키우는 맞벌이 부부의 현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자녀를 키우느라 공무원직을 그만둔 언니도 있다. 모두들 아깝다고 하지만, 언니는 서울에 계속 살면서 내 집 마련에 성공했고, 광진구의 고가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고시 준비를 접고, 돈을 모아 결혼한 후 살림에 전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우고 싶었고, 시댁이 가까운 지방에 살게 되었지만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결국 나 혼자 키우는 삶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방에 내려가자마자 시작한 학원 강사 일도 출산 후 과감히 접을 수 있었다.

갓난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갔다. 지금도 아이들 어릴 적 동영상을 보면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엄마로 살아간 절대적인 시간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별하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책과 재테크를 좋아합니다.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기에 상황과 생각이 변하지만, 단단해지는 중입니다.

13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0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