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이야기 : 각자의 집, 각자의 삶]
삶은 전쟁터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 역시 그 전쟁터를 지나며 살아왔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조직이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단순히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금세 현실과 부딪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는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말처럼, 열심히 일한 사람과 보상을 받는 사람이 항상 일치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서로 편한 업무를 맡기 위한 신경전도 치열했다. 결국 나는 직장생활을 통해 종잣돈을 모은 것으로 만족했다.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우리의 결혼생활은 그럭저럭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시댁 가까이에 살아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둔 것이 문제였을까?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깊게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그림자 속에서 ‘며느리’는 어떤 존재인가? 남편에게는 모든 것이 당연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결혼생활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시부모님의 부름에는 늘 가야 했다. 그 종속적인 관계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동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두고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라 했고, 시아버지는 "자린고비"라 말했다. 물질적인 인색함은 참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마음까지 닫혀 있다는 점이 더 힘들었다. 수박이나 고기 같은 먹을거리를 사서 가느라 조금만 늦어도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가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 갈 수 있다면 정말 안 가고 싶었다.
아무리 잘해도 며느리는 며느리밖에 되지 못한다. 나는 며느리 역할을 하고도 ‘못한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내 어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속병이 깊어졌다. 남편에게는 익숙한 불만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며느리인 나에 대한 불만까지 그에게 쏟아졌다. 남편만 혼자 시댁에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점점 숨이 막혔다.
남편은 “부모님이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셨다”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며느리인 나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고요했던 내 삶에 돌멩이들이 쉼 없이 던져졌다. 나는 시댁의 가부장제 앞에서, 마치 사면초가에 갇힌 듯한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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