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학과 자기 계발서에서는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는 전제가 항상 나옵니다. 큰 목표를 작은 목표로 쪼개어서 작은 성취들을 이루어 나가다 보면 큰 목표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글쓰기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언젠가는 책을 내겠지 하는 막연함이 목표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냥 쓰는 글이 아닌 완성본의 구상을 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압박감을 받았거든요. 블로그 글 이외에는 한 자도 쓰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고요. 한 살의 나이를 추가로 적립했습니다. 마흔의 나이가 무엇을 하기에 애매한 나이라고도 하더라고요.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려니 모든 면에서 너무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나이가 마흔 중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둥지
제가 취득한 중등교사 자격증과 청소년가족상담사 자격증, 논술과 독서 지도사 자격증을 사용하기 위한 마지막 시기가 마흔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20여 년이라는 경력을 쌓고도 남았을 시간이기에 이미 자신의 위치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도 있을 나이가 마흔 중반입니다. 나의 선배이기도 한 남편 역시 최고 관리자의 지위에 있고 보니 나의 경력 단절이 가져다주는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과거형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흔에서 차곡차곡 나이를 적립 중인 저는 어느 순간 내가 가진 것들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친인척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이별을 전한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지금은 없지만, 이별의 시간은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있으니까요. 지금의 저는 엄마라는 역할조차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결혼과 동시에 왜 엄마가 되려 했는지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을 했더라면 결코 엄마가 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이 우리를 닮은 아이들을 낳아서 그림 같은 집에서 행복하게 오순도순 사는 소꿉놀이인 줄로만 알았나 봅니다. 나조차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선물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인하지 못한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마흔이라고 더 어른스러운 내가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쩜 시간 쓰기의 달인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훌쩍 잘도 흘려보냅니다. 이 글을 쓰고 다음 나이를 적립할 시간이 오기까지는 그저 마냥 글 쓰는 것이 좋아서 많은 글들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