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음에도 나의 글은 공감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도 처음에는 역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지요.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1992년의 서태지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외쳐봅니다.
나에게 글쓰기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예전의 나와는 많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 버렸는데요. 엄마로 지내온 시간이 헛되거나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 긴 터널로 들어가서는 무기력함과 우울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쩌다 드는 비교의 심리를 인정하고는 얼른 제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물론 비교심리도 잘만 쓰면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것입니다. 서서히 글쓰기에 스며들 것입니다.
아는 변호사로 유명하신 이지훈 변호사님이 이야기하는 결혼과 이혼의 이야기들은 저절로 공감이 됩니다. 변호사라는 직함 때문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선한 성품이 느껴지기 때문인데요. '나와 너'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혼을 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여 권위자 편향의 오류를 가진 것은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기도 합니다만 신중한 결혼을 하자는 논리에 오류는 없어 보입니다.
가정주부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공론화 등의 활동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맞벌이 시대입니다. 더 나아가 국민 절반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 0.78명의출산율 시대(서울은 0.5명)에서 가정주부를 점점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경력도 단절되고, 마흔도 넘은 나이에 이렇게도 성장해 갈 수 있구나, 생활할 수 있구나 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