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가 나를 옛 동네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다. 육교의 낙서, 등하굣길, 이층집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백번대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 내가 취학 전 살았던 동네이다. 대부분 단층의 주택가였던 어릴 적 동네는 마주 보는 집 사이의 도로가 넓었다. 나는 내 동생을 포함한 동네 아이들과 주로 집 앞에서 놀았다. 또래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초등학교를 갈 무렵이 되자 이사를 가기도 했다. 나는 육교를 건너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요' 하는 낙서를 보면서 친구와 킥킥거리던 등하굣길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육교를 건너지 않아도 학교를 갈 수 있는 이층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마도 부모님은 자식 넷의 공부를 위해서 방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마당에 사철나무가 있는 그 이층집은 나에게 이층집 소녀가 되었다는 낭만을 가져다주었다. 그 집에서 초 중 고교를 졸업하던 시간 동안 부모님은 아파트 분양을 신청하고 계셨다. 어느 해인가 당첨이 되셨는지 이층집을 팔 생각을 하셨고, 우리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빨리 나타났다. 아파트 분양을 받고 입주하려면 2~3년의 시간이 걸리기에 부모님은 우리집을 팔고 신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셨다. 그때부터 나의 아파트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러고 부모님과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를 하던 해에 나는 결혼을 했다.
붉은 벽돌을 깨서 고춧가루처럼 풀 잎사귀에 뿌리고, 모래에 물을 부어서 밥인지 떡인지를 만들어 놀았다. 한글을 떼지 않아도 되었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백번대 버스를 탄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재의 기억보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난다고 하는데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택시가 길을 잘 못 들어서서 지나간 곳이 어릴 적 살던 곳이었다는 문장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오래전 학교 앞 육교는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요' 하는 낙서도 육교가 허물어지기 전에 다시 페인트칠되었겠지만, 그때의 순수했던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백번대 버스에서 내렸다. 어릴 적 동네로 가는 길목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랭 쿠키 전문점 같은 요즘 시대에 맞는 점포가 들어섰을 뿐, 다른 그림 찾기를 할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만화책 등을 대여해 주던 동네 책방이 아직 있다는 것은 신기했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부터 있지는 않았으리라. 책 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시기가 있었다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기도 했는데 그러한 대여점을 지금까지 간직한 동네라니 출발부터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던 주택가로 들어서지 못했다.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 부지 안내문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깨끗하고 넓었던 주택가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오랜 시간 앞에서 옛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을 더 둘러보니 이미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추가적으로 아파트 단지가 더 지어지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제 아파트 세상이 되는 것이다. 문득 앞으로 이곳에서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옛 동네는 아파트 공사 중
백번대 버스를 타기 전에 나는 1분 만에 손품으로 어린 시절 동네에 대해 알 수도 있었다. 그러한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냥 어린 시절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요'라고 얼레리꼴레리(알나리깔나리) 하던 까마득한 시절의 모습이 옛 동네에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랐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요' 하던 과거 시절과 현재 나를 움직이게 한 글의 힘이 있었다면 백번대 버스의 미래는 전기버스일까. 백번대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하트 낙서를 하고 싶어졌다. '나 하트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