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전쟁을 옹호하고 원하는 사람이 보면 이해가 안 될만하고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대는 어떤 나라들 간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청년 세대가 정치인들의 이익관계로 인하여 사회에서 꽃 피우지 못하고 원치 않게 죽게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찌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옆 동료가 살아있다가 한번에 사라지는 그 공포… 식량이 끊겨서 흙, 화약을 먹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그 애처로움… 전쟁을 참전하신 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려옵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처절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세대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 이념이 어떻든 간 후대에 전쟁은 옳지 않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자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범국의 시민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청년으로서, 시민으로서 전쟁을 원했을까요?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이 연소 무관하듯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마음속에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을겁니다.
이 세상에서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평화의 목적이 전쟁을 통하는 것이든 대화를 통하는 것이든 다들 평화를 원할 겁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평화는 전쟁이 없고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지 아니하는 평화의 그런 날을 누구나 꿈꿀 겁니다. 이런 평화를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헛된 망상이라며 나무랄 겁니다. 왜냐하면 인류 탄생 이래로 부족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늘 전쟁을 통해 국가를 지켜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한다며 병력증강, 군비 증가, 신무기 개발 등을 해온 게 우리 지구촌의 역사입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했습니다.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고자 선제공격하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아무 의미 없이 죽은 제 나이 또래 청년들.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은 청년들 말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어떤 이유로 시작되는지 아시나요? 종교적 이유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이는 엄청 오래된 전쟁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라는 신이 시온산에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영토가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에 있어 그 땅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시오니즘' 운동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종교적 명분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시행되는 전쟁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든 전쟁의 공통점은 청년들이 최전방에 나서서 싸운다는 겁니다. 정치인, 군대 간부는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청년 모두가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목숨을 잃은 청년들은 꽃다운 나이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게됩니다. 희생된 청년, 그 부모에게 보상도 해줄 수 없는 실정입니다.
보상이라 하면 죽은 청년들이 부모의 품으로 살아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단어를 표현하는 단어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쟁으로 자식 잃은 부모에게 돈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 그 부모의 평생토록 사무치는 마음을 다 갚아줄까요? 아닐 겁니다. 진정한 보상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 참전하게 한 국가에서 전쟁에 의해 희생한 청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 그것이 부모가 원하는 보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전쟁을 원하시나요?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전쟁 없는 평화 세계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가끔 꿈을 꿉니다. 전쟁터에서 제가 총을 들고 있으면서 바로 앞에 포탄이 날아와 그것이 터지는 꿈을 말입니다. 그 꿈을 꾸고 나면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있고, 등에는 식은땀으로 옷이 젖어 있습니다. 그 만큼 저에게는 전쟁이라는 것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되니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있습니다. 종교적 분쟁으로 약 40년 동안 가톨릭과 이슬람 간의 전쟁이 있었던 곳을 말이지요. 그 곳에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의 목적이 '평화'였습니다. 서로 평화를 원하고 시민들도 평화를 원하기에 하루아침에 평화가 찾아온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연을 들으면서 평화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두의 노력과 모두의 뜻이 모이기 위해 노력하면 가능한 것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기에 말입니다.
해외는 이 사례를 이야기 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국내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소개하기에도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리핀에 민다나오라는 지역에 약 40년 간 가톨릭과 이슬람 간의 분쟁으로 인하여 약 12만 명이 전쟁으로 죽어 나갔습니다. 40년간의 분쟁으로 인하여 그 곳에 있는 시민들과 각 종교 지도자들은 얼마나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지는 이해하실 거로 생각해봅니다.
지구촌의 평화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그곳으로 가서 두 종교 지도자를 한 자리에 앉혀 놓고 시민들을 앞에 놓고 평화를 원하는 사람 손 들라고 하니 다 손을 들었고 가톨릭과 이슬람은 하나님을 믿기에 두 종교 지도자에게 "하나님께서 전쟁을 원하시냐"라고 물어봤는데 그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원하는 것이니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하였고 이후 평화에 대한 논의, 다양한 회의를 한 결과 현재는 그곳에 만연한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완연한 평화가 이루어진 곳은 필리핀에 있는 민다나오섬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평화라는 것이 단순 추상적이고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닌 가까이서 이뤄진 것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전쟁과 무력을 통한 평화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대화를 통해 평화가 이뤄졌으니 평화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탁상공론처럼 대화하는 것이 아닌 "평화"라는 목적 하나로 평화의 세계를 후대에 물려주겠다는 그 목적이 일치한다면 서로 대화를 할 때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평화의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거로 생각해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전쟁의 고통으로 인해 생겨난 아픔을 주제로 평화에 대해 처음과 끝을 잘 알려주고 있으며 마지막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고 전쟁의 세계가 찾아옴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평화라는 것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통해 평화를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메시지는 평화를 물려주기 위해 후발 주자인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랑앵무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정치적 이유와 명분으로 세계를 무너뜨린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뒷세대인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선택해야 할 겁니다. 사랑앵무처럼 자신에게 솔직하거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과 권익 때문에 잡아먹을지 아니면 주인공의 큰할아버지처럼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안정된 세상만을 추구할지 아니면 주인공처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될지는 그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세상은 지구촌에서 원치 않은 전쟁으로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한 제 또래들이 없는 그날과 제 조카, 동생들이 '전쟁'이라는 그 단어를 사전에서도 찾아보지 못하는 그날을 꿈꿉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촌에는 전쟁이 없는 그 세계가 속히 찾아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