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1월에는 브런치 알림이 바쁘게 울렸다.
알림 창에 브런치 로고가 뜰 때마다 설렜다.
설렘에 보답이라도 하듯 메일에는 기쁜 소식이 가득했다.
바쁘게 울리는 브런치의 알림은 각종 출간 제안과 기고 제안이었다. 다른 주제의 글들에 비해 조회수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메타버스 관련 글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되어 1만 뷰 이상을 찍었던 글들과는 달리 메타버스 관련 글은 조회수가 그리 높지 않아도 매번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메타버스와 주식,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글들은 많아도 메타버스 교육 관련 글은 드물기 때문인 듯했다.
브런치에 쓴 글을 누군가 봐준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 글을 보고 정말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실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을 받았다거나 기고 제안을 받았다는 글들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면서 나와는 정말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주 운이 좋거나 아주 글이 뛰어난 작가님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일이 진짜 나에게도 일어났다.
2군데에서 기고를 시작했고, 1건의 출간 계약을 했으며, 또 다른 1건의 출간을 논의 중이다.
이 모든 것이 브런치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다음 브런치라는 채널을 알고, 브런치는 심사를 통과해야만 글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마냥 신기해했다. 그 시스템에 나도 들어가고 싶어 그냥 생각한 글 3개를 내리써서 심사요청을 했다. 지금 보면 참 미흡한 글들이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뭔가 인증을 받은 특별한 기분에 삼일 동안 설렜다. 그 후 생각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점점 구독자 수도 늘고, 다음 메인에 걸려 조회수도 많이 찍혔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브런치 조회수가 높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출간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친한 주변 사람들 몇 명에게만 브런치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브런치의 이름과 필명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일상을 나누는 나만의 소통창구가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리고 이 행복한 소통창구를 현실에서는 숨겨야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놀랍게도 알아보는 선생님이 계시긴 했지만 짐짓 모른 척하려고 애썼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이유는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신규발령을 받고 나서부터 매년 굵직한 보고서들과 각종 대회를 위한 자료들을 제작했다. 상을 받기 위해서, 예산을 받기 위해서, 학교 표창을 받기 위해서. 1년에 보고서들을 수도 없이 써 내려갔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썼고, 발표했고, 성과를 냈다. 사실 아이들과 1년 동안 활동한 내용들이 그냥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나 자료 제작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직 11년을 돌아보니 1년간의 보고서들은 있는데, 나를 온전히 드러내 주는 순간들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기록들은 있는데, 나의 생각이 없었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내 생각을 필요로 하는 보고서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을 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 특별한 아이를 만났을 때 느끼고 생각한 점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고, 안개 낀 것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록은 그런 것이었다. 시간을 잡아 두는 것.
그런데 아이들의 시간은 잡아 두었는데 정작 내 생각의 시간은 잡아 두지 못했다. 문득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교육청 활동과 표창, 다양한 지도안 대회 수상, 아이디어 대회 수상 등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주제로 쓰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만을 생각하는 글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를 썼다. 물론 학교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랑이 아이를 봐주는 주말, 그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해서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버거워하긴 했다. 학교일이 정말 바쁠 때에는 근 한 달을 쓰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썼다.
사실 브런치와 동시에 블로그도 시작했는데 블로그가 how to 쪽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면, 브런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쓸 수 있는 곳이었다. 어릴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 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무언가 쓴다는 행위가 감정의 해소가 되고, 스트레스의 해소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보고서들을 쓰면서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글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의 시간과 생각을 저장한다는 느낌에서 짜릿했다. 기한도 내 마음대로, 포맷도 내 마음대로여서 더 짜릿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끌어 가던 브런치가 이렇게 나에게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사실 콘텐츠와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면이 컸다. 메타버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이제 메타버스의 교육적 활용으로 옮겨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교육을 검색어로 하는 유입량도 점차 많아지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또 다른 루트에서도 원격연수 제작이나 강의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때 브런치에 쓴 글들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내가 실천한 교육내용들을 정리해서 바로 세상에 보일 수 있던 것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작가의 서랍에는 초고로 마구 써 내려간 메타버스 관련 글이 10개도 넘게 쌓여있다. 세상에 내보이기 부끄러워 꽁꽁 숨겨두고 언젠가 수정해서 보여야지 하고 있다. 관련 사진도 많이 넣고 싶었는데 백업하지 않은 채 학교 컴퓨터가 초기화되어서 다시 작업해야 하기에 마음만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내가 내놓은 아이디어 중의 일부에도 관심을 나타내며 다듬어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 했다.
사실 교사에게 외부활동은 겸직신고와 외부강의 활동 신고를 해야 해서 번거롭다. 관리자분들께 어떤 일인지, 비용은 얼마나 받는지, 언제까지 지속되는 일인지 공문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기고와 출간, 원격연수 제작에 응하게 된 것은 그런 글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서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의 반짝반짝한 생각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통해 기고를 하고, 출간을 하게 되었다.
올해는 유튜브도 좀 더 키우고, 블로그도 좀 더 키우고, 오디오 클립도 시작하고, 브런치에 글도 열심히 써야지라며 새해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빨리 그 일들이 이루어질 것 같다. 사실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는 가슴에 무거운 돌이 얹힌 느낌이었다. 책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이 무거운 일이었다.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서 머릿속에는 온통 책 생각뿐이었다. 수많은 자료들을 교차 검토하고, 해외동향도 살펴보고, 다시 내 글을 보며 초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있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브런치는 기고와 출간뿐 아니라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알 수 있게 하는 인사이트를 주었다. 브런치로 유입되는 검색어를 알 수 있었고, 반응이 좋은 글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브런치 북으로 묶어 내면서 볼 수 있는 '인사이트 리포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떤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 어떤 글에 관심도가 높은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그 주제로 꾸준히 써서 브런치 북을 묶어서 내보는 것이 세상에 어떤 생각을 내 보일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브런치가 없었다면 기고를 하거나 출간을 하는 일을 꿈꿀 수 있었을까. 나를 기록하는 일은 의미 깊은 일이었다. 브런치는 그 의미 있는 일을 더욱 의미 있게 해 준다. 브런치 공모전에 탈락했다고 하여 글을 그만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글이라는 원석을 멋지게 가다듬어 세상에 꺼내 줄 이들을 브런치에서 만날 수 있다. 앞으로 출간 기록도 틈틈이 하여 책이 출간되는 그날 브런치 북으로 묶어 함께 내놓을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브런치가 가져다 줄 선물을 만끽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