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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Feb 04. 2022

선생님의 2월은 심란하다

학교 전보와 새 학기 준비의 달

"선생님, 발령 축하드립니다. 월요일 10시에 학교 교무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심란한 2월임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문자다. 드디어 발령이 났다. 선생님의 2월은 학교 전보와 새 학기 준비로 심란하다. 2년 동안 왕복 3시간의 출퇴근 거리를 버틴 끝에 전보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살고 있는 시로 돌아오게 되었다. 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학교를 자주 옮겨야 했다. 4~5년마다 한 번은 학교를 옮겨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에는 같은 시 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9~10년으로 정해져 있다. 교직 생활을 24살에 시작해서 62살에 마무리한다고 봤을 때 38년 정도의 근무를 하는 데, 보통 8개~10개 정도의 학교를 옮기게 된다.


특히 같은 시 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소 먼 출퇴근 거리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희망지역을 쓰긴 하지만 대부분 근무하기를 원하는 곳이 비슷하기 때문에 점수에서 밀리면 다소 먼 지역으로 발령이 난다. 나 역시도 신규발령을 받은 도시에서 9년을 근무하고, 근처 시를 썼다. 하지만 점수에서 밀려 2년 동안 출퇴근 시간에 3시간 이상을 사용했다. 출퇴근 시간이 미치는 피로도가 너무 높아 2년이 되자마자 살고 있는 시로 전보신청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2월에나 나오고, 그동안 될지 안 될지 엄청 걱정을 했다. 특히 5년 이상의 만기를 채우지 않은 사람은 희망지역을 1순위 1개만 쓰게 된다. 만약 같은 상황의 사람들과 점수를 비교해서 1순위에서 밀리면 현재 다니는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한다. 1순위에서 밀리면 1년을 더 먼 출퇴근 거리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교사 발령의 가장 난감한 점은 발령이 2월에 확정 난다는 것이다. 3월 2일에 본격적인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발령이 나자마자 통근 거리 및 출퇴근 방법을 정해서 급하게 이사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전보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집을 먼저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만약 희망 지역으로 가지 못하면 다시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거주지와 출퇴근을 정함과 동시에 원래 교실의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학교로 짐을 옮기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비워주는 교실을 청소하고, 새로 들어가는 교실을 청소하고, 가지고 있는 짐을 정리한다. 새 학교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사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자신의 사비를 털어 항시 휴대하고 있는 물품들이 꽤 많다. 보통 이삿짐 박스 3~4개 정도는 기본이다. 이를 나르고 정리하는 것도 역시 선생님의 몫이다. 그래서 2월에 선생님의 몸살은 필연적이다.


2월이 되면 학교마다 연일 새 학기를 위한 연수가 이루어진다. 낯선 환경에 던져져 선생님들의 얼굴을 익힘과 동시에 새 학교 시스템에 적응해 간다.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는 사람들은 학교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학교마다 시스템이 미묘하게 다르다. 관리자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다르고, 그 해 교직원 구성원에 따라 다르고, 학생들의 성향도 다르다. 심지어 학교 구조도 학교마다 달라 나 같은 길치는 길을 헤매기도 한다. 업무를 추진하는 순서, 갖추어야 할 서류, 하다못해 분리수거 방법까지 다르다. 새 학교에 옮기게 되면 신규발령을 받은 느낌으로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학교를 옮겨야 하는 교사들은 2월이 참 힘들고 심란하다. 


특히 2월은 3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미리 하기 위해 더욱 분주하다. 아이들이 첫 교실에 들어서는 두려움을 줄여주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익히고, 책상 자리도 배열하고, 사물함도 정비한다. 청소용품이나 준비물도 꼼꼼히 체크하여 3월에 바로 정상적인 수업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한다. 교실도 삭막하지 않게 예쁘게 꾸미고, 아이들의 종업식 이후에 도착한 교과서가 있다면 교실로 옮겨 배치한다. 연구실도 정리하고, 새롭게 만난 동학년 선생님들과 논의하며 교육과정과 평가도 정비하면서 새 학기를 준비한다.


이렇게 바쁜 2월에서 사실 제일 난감한 점은 내가 어떤 업무를 맡을지, 어떤 학년을 맡을지를 발령이 난 후에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교감선생님과 연락을 해서 발령받은 학교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어떤 업무와 학년이 남아있는지 알 수 있다. 학교도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정말 많다.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하려면 방과 후 교사의 선정, 방과 후 과목의 선정, 계약, 월급 지급 방식, 학생 희망 및 추첨 방식 등을 정해야 한다. 학교에서 실시되는 평가의 방법 및 시기 등도 결정하고, 교원능력개발평가, 체험학습, 정보화 기자재 관리, 인성교육, 과학교육 등등 정말 온갖 업무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업무를 분배해 두고, 업무를 맡을 사람을 정하는 식으로 업무 배정이 이루어진다.


수시로 공문도 오고, 보고해야 할 것들도 많기 때문에 어떤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1년이 달라진다. 어떤 학년을 맡느냐도 걱정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1학년과 6학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2월 발령이 나고 교감선생님을 뵙고 업무와 학년이 결정될 때까지 내가 맡을 업무가 무엇인지, 어떤 학년을 맡을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불안성을 증폭시키는 불확실성이 선생님의 2월을 심란하게 한다. 


그래서 발령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휴대폰은 불이 난다. 발령 난 선생님, 발령 나지 못한 선생님들의 심란함이 전화 너머로 전해져 온다. 나 역시도 심란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점은 없는 데, 새 학교 분위기는 어떨지, 가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을 만날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해야 할 일들도 생각하고, 미리 컴퓨터 파일도 정리한다. 방학에 선생님들이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런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 연수도 듣고, 공부도 많이 한다. 학교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있어도 사실 심란한 건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람들의 발령상황과 업무 및 학년 희망사항을 종합하여 학년과 업무가 2월에 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2월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교사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니라 3월 1일이기 때문이다.


일반 회사는 12월 연말 처리를 하고, 1월에 시무식을 하며 새해를 준비한다. 그러나 학교는 아이들의 개학인 3월 1일이 기준이다. 그렇기에 교사의 새해는 3월 1일이다. 2월에 교실을 체크하고, 수업을 점검하고, 3월에 처리할 일들을 미리 점검해야만 그나마 맨 정신으로 3월에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 위를 누군가 주먹으로 꽉 움켜쥐는 듯한 통증이 오는 것을 보니 어김없이 2월이 다가왔다. 교감선생님의 문자를 받자 새 학교, 새 시작이 실감이 난다. 


아이들이 3월 첫날을 설레면서도 두려워하듯이, 선생님도 3월 첫날을 준비하며 설레면서도 두렵다. 그래서 2월은 더욱 심란하다. 일정한 기간마다 학교를 옮기는 것은 교사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하지 않기 위해 학교를 옮길 수 있지만, 새로운 학교에서 누구를 만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퇴근 거리를 줄일 수도 있지만, 출퇴근 거리를 늘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새롭게 맡을 수도 있지만, 내가 꺼려하고 자신 없는 일을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심란함이 없으면 3월에 아이들을 맞는 설렘도 없을 거란 걸 알기에 선생님들은 묵묵히 2월의 심란함을 견뎌내며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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