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직업에서 좌절을 겪는 당신에게, 선생님도 그렇다. #1
"아, 정말 못해먹겠어. 왜 나한테 이런 거 하라고 했어?
왜 아무도 이런 건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
원망은 왜인지 모르게 항상 누군가를 향한다. 나를 향하는 원망은 참 드물다. 내가 매일 겪는 좌절에 대한 원망은 나에게 교사를 추천했던 모든 사람에게 돌아갔다. 모두들 말했다. "교사가 편하다. 특히 초등교사가 되면 얼마나 좋냐. 아이들이랑 함께 지내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당연히 초등교사가 좋은 직업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좋았고, 교생실습 때 만난 아이들과의 기억도 행복했다. 그 어렵다는 1, 2, 3차의 임용고시를 통과했으니 나의 앞날은 핑크빛일 거라고 생각했다. 교생실습을 다녀오고 나서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떠나는 동기들을 보면서도 나는 참 내 길을 잘 찾았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교사가 되어 교실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느낌은 좌절과 원망이었다. 교생실습 때 만났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되는 직업이 아니었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장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꿈꾸던 일 이면에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일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직업을 얻었는데 얻게 된 것이 좌절과 원망이라니.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본 아이들은 예쁘게 앉아 수업을 듣고, 선생님에게 항상 방긋방긋 웃으며, 발표도 잘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부푼 기대로 정식 초등교사가 되어 담임교사로 교실에 들어갔을 때, 교생실습 때 아이들의 모습은 교생실습을 위한 담임선생님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진로를 탐색하며 만나는 흔히 말하는 직업의 멘토들도 자신의 직업에서 자랑스러운 부분만을 이야기한다.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멘토는 거의 없다. 초등교사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엎드려 있는 3학년 아이.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애원도 해보고 했지만 변함이 없었다. 화가 나면 입을 꾹 다물고 온 몸으로 하기 싫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아이. 책을 펴보자고 선생님이 손수 책을 펴면 바닥에 책을 내던졌다. 전학을 와서 전 학년의 선생님의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아이. 30년 차의 옆반 부장님도 들어와 보고 절레절레 손을 들고나가버린 아이. 그 아이가 나의 첫 좌절이었다.
비단 그 아이뿐이겠는가.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60개의 눈이 나만 믿고 바라보는 그 숨 막히는 경험의 압박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떻게 할지만 보고, 그에 따라 움직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매일 눈을 뜨면 출근길이 무섭고, 교실 문 앞에서 문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다. 마치 발아래 거대한 늪이 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우유갑을 못 뜯고 들고 나오는 아이, 점심 먹은 것을 복도에 온통 토해놓는 아이, 수업 중에 자리에 앉지 않고 돌아다니는 아이, 바지에 오줌을 싸서 우는 아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처음인 나는 정말 매일 우왕좌왕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직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초등교사의 일 중에 정말 일부일 뿐이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났을 때, 초등학교 때 은사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의 첫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힘들지?"
그 말이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교사가 된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주변에는 말할 수 없었다. 주변 선생님들께도 혹시나 내가 피해가 되고 짐이 될까 봐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은사님의 말 한마디에 마음에 단비가 내리는 느낌이었다. 이미 그 길을 겪어온 40년 경력의 선생님의 말씀은 정말 울림이 컸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묵묵히 듣던 선생님은 이 한마디를 하셨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하니라 해야."
누구나 아는 해와 바람과 나그네 이야기. 나그네가 지나가자 해와 바람은 내기를 한다. 누가 나그네의 옷을 먼저 벗기나. 바람은 자신만만하게 나섰지만 거센 바람이 불자 나그네는 옷을 벗기는커녕 옷을 여몄다. 해가 빙그레 웃으며 쨍쨍 햇살을 비추자 나그네는 옷을 금방 벗었다.
이 진부한 이야기를 듣자 뒤통수가 띵했다. 그렇구나.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해구나. 차가운 바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오그라들고 닫히게 하는구나. 나는 아이들에게 해가 아니라 바람이었구나. 아이 것들을 어떻게 통제할지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교사가 되는 것을 잊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자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다음 날부터 나는 해가 되기로 했다. 그러려면 해가 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교대 때 배운 전공서적 대신에 현장교사들이 쓴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샀다. 옆반 선생님 반을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과연, 행복한 미소를 띠는 선생님들은 정말 해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의 태도 변화에 따라 아이들은 정말 서서히 바뀌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된 것이다. 첫 해의 그 강렬한 경험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만약 그때의 절망감이 없었다면 바람이 최고라며 지금도 신규교사에게 아이들은 3월에 잘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의 경험으로 나는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나가는 비법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해가 핵심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했던 중학교 생활이 아니에요. 내가 생각했던 고등학교 생활이 아니에요. 내가 생각했던 대학교 생활이 아니에요. 내가 생각했던 직장 생활이 아니에요." 모두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직장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들 직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다는 걸 알기에, 굳이 직업을 얻은 이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희망은 저만치로 달아나버리고 어려움과 좌절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내가 이렇게 무능했나. 내가 이 짓을 하려고 그 노력을 했나.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출근을 하나. 매일 출근을 하면 그런 우울감과 의문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세계에 내딛을 때는 설렘이지만 사실 우리는 좌절을 더 많이 겪게 된다. 그런데 그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생각 말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라 해였듯이, 어려운 상황에서 상황을 바꾸는 건 따뜻함이다.
우리가 보는 그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시작은 누구나 힘들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 그 어디에도 나에게 꼭 맞는 상황은 없다. 그 어디에도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은 없다. 어떤 직장이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당연히 있고, 그 일을 하며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공의 관건은 그 힘든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큰 가지인 내가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를 생각하며, 작은 가지만 보며 좌절을 겪고 있지 말아야 한다. 첫 직장에서 좌절을 겪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이 아니라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