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보고 ㄱ자도 모른다) 선생님 필수품이 케이블타이?

꿈꾸던 직장에서 좌절을 겪는 당신에게, 선생님도 그렇다 #2

by 꿈꾸는 맹샘

"선생님, 케이블 타이 있어요?"


날이 더워지자 선생님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실은 이맘때 큰 행사를 치러야 한다. 바로 선풍기 닦기! 보통 고학년은 제일 위층을 사용하게 되는데, 학교에서는 제일 위층이 제일 덥다. 신규 교사가 발령나면 대부분 고학년에 발령이 난다. 에어컨을 틀어주긴 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추운 아이도 있고, 더운 아이도 있어 선풍기는 필수다. 모두의 입맛을 미세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선풍기가 제격이다.


교실 선풍기는 대부분 오래 사용하기 때문에 선풍기 결착 부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케이블 타이로 4 귀퉁이를 꽉 묶어주어야 안전한 결착이 가능하다. 난 케이블 타이로 선풍기를 결착하는 걸 학교 와서 처음 봤다. 사실 천장형 선풍기도 닦아본 건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처음 하는 게 한 두 개이겠는가. 집에서는 많아야 2개 정도였지만 교실은 기본 4개는 닦아야 한다. 그것도 높이 매달려 있는 선풍기를. 게다가 결착 부위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서 천장에 매달려 닦은 선풍기에 케이블 타이를 묶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선풍기를 닦기로 한 날은 체육복을 입고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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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에는 선생님들이 묶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각종 도구를 가지고 등장한다. 퐁퐁, 수세미, 고무장갑, 걸레 등등. 아이들 수업하느라 진이 빠졌지만 날이 더워져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작년 선생님이 묶어 둔 케이블 타이를 잘라내는 것부터 일이다. 어찌나 단단한지 가위 가지고는 택도 없다. 단단한 공구를 밀려와서 목을 꺾어가며 선풍기를 떼낸다. 떼낸 선풍기를 가지고 화장실에 가니 이미 세면대에는 다른 선생님들이 와계신다. 묶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각종 도구를 가지고 등장한다. 퐁퐁, 수세미, 고무장갑, 걸레 등등. 나도 같이 열심히 때를 닦는다. 선풍기의 묶은 때를 모두 벗겨내고 물기를 걸레로 닦고 다시 매단다. 팔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예전에는 선풍기 커버를 씌워두어서 먼지가 많지 않았는데, 선풍기 커버를 씌운 채 선풍기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로는 선풍기 커버는 금지다. 겨울 내내 뽀얗게 쌓인 먼지를 보고, 아이들에게 그냥 틀어줄 선생님은 없다. 목과 팔이 아프지만 기어이 몇 번씩 떨어뜨려가며 케이블 타이를 묶는다.


개운한 마음으로 시범가동을 해본다. 아뿔싸! 하나가 안 돌아간다. 내가 잘못 결착한 건 아니겠지? 의심해 보고, 옆반에 뛰어가 본다. 옆반 선생님도 결착은 잘 된 거 같다고 하신다. 행정실에 이야기해둔다. 힘이 빠져 물 한잔을 마시고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있으며 생각한다.


왜 아무도 초등학교 교사가 선풍기까지 닦는 거라고 말해주지 않은 걸까?

교수님도 모르셨겠지. 초등학교 교사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야.


처음 학교에서 내가 선풍기를 닦는다는 말에 신랑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선풍기를 왜 선생님이 닦아? 4대? 뭐? 에어컨 필터도 닦는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선풍기도, 에어컨 필터도 선생님이 닦는다. 에어컨 필터는 이제 업체에서 해주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긴 하다. 선풍기를 닦는다는 사실에 회사에 다니는 신랑은 가히 충격적인 듯 보였다. 난 사실 신랑네 회사에 열 창문이 없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내부 순환으로만으로도 충분하다나? 선풍기도 필요 없다고 한다. 에어컨이 잘 나와서. 그렇구나. 회사는 그렇구나.


사실 신랑이 저 말을 하기 전까지 난 당연히 모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 사무실 선풍기를 닦는 줄 알았다. 아니었구나. 선풍기를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니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란다.

"그걸 왜 케이블 타이로 묶어?"

결착 부위가 없으니까. 우문현답이다.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이것도 아니었구나.


사람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직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 학교에서 애매한 일은 모두 교사의 몫이다. 선풍기 닦기에 대한 업무 배정이 없으므로 교사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공문이 왔는데 업무 배정이 없으면 교사가 하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교실이 업무공간이기 때문에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도, 선풍기를 닦는 것도 모두 교사의 몫이다.


선풍기를 닦는 날은 가방이 무겁다. 선풍기를 닦고 매다는 데에는 아무리 짧아도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수업 연구는 그날 학교에서 할 수가 없다. 집으로 가져가야 할 교과서 때문에 또 가방이 무겁다. 선풍기를 닦았다고 내일 수업을 소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은 일생에 한 번 배우는 내용이 있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풍기 청소를 한 날은 좀 허무해지기도 한다. '선풍기 청소도 선생님이 해야 하는 일이구나. 몰랐던 일을 하려니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선생님만 그럴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 생각지도 못한 업무를 받아 황당할 때가 있다. 그야말로 직업을 준비하면서 직업보고 ㄱ자도 모르다. 직업이 주로 하는 일만 알고 그 이외의 것들은 알지 못한다. 사실 알 수도 없다.


진로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각종 사람들과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진료를 받다 말고 "의사 선생님, 참 부러워요.", 헤어디자이너를 만나면 머리를 하다 말고 "디자이너님, 참 부러워요." 이런 말을 하면 돌아오는 말은 항상 "아이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야말로 초등학교 교사가 참 부러워요."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직업보고 ㄱ자도 모르는 진로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아는 좋은 직업,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진로교육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만 해도 그렇다. 배부른 소리 한다고 이야기한다. 애들한테 쉬운 공부 가르치는게 뭐가 힘드냐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하다고 부러워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는 더더욱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서상 힘든 일을 한다고 내색을 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 배부른 소리 하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이 그 직장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케이블타이가 선생님의 필수품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되기 전에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6학년 때 제자가 초등교사가 된다고 했을 때 난 차마 그 이야기를 해 줄 수 없었다. 희망을 꿈꾸고 있는 아이 앞에서 초등교사의 힘든 점을 어떻게 이야기 하겠는가. 그러니 직업보고 ㄱ자도 몰랐던 것은 나만이 아니다. 모두 그렇다. 선생님도 그렇다. 꿈꾸던 직장에서 좌절을 겪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다. 모두 그렇다. 이미 취직을 했고, 돌아보면 간절히 바라던 일이다. 모두가 겪는 그 과정을 당신도 함께 겪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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