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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Jun 01. 2021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자) 지칠 때 꽃반지 떠올리기

작은 순간의 행복이 지친 마음에 미소를 건넨다.

"선생님, 선물이요."

수줍게 내민 꽃반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작은 손으로 내 손에 꽃반지를 만들어서 끼워준다. 순간 일에 지쳐 무거워진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머릿속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실 오늘은 마음이 참 무거운 날이었다. 출근길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비 탓에 학교에 오는 내내 고민했다. 숲 체험을 취소해야 하나. 취소하면 다음에는 비가 안 온다고 장담할 수 있나. 졸업앨범 업체에도 연락해야 하는데. 취소하려면 옆반 선생님들과 논의하고, 관리자분들께 보고하고, 숲 체험 강사님께 말씀드리고, 앨범업체에도 이야기해야 되나 보다. 내리는 비에 마음까지 지쳐갔다. 내일은 공개수업도 예정되어 있고, 제출해야 할 공문은 산더미이고, 개인적인 자료 개발 일도 처리해야 했다.


다행히 비가 멎었고, 나의 걱정도 멎었다. 생각이 주렁주렁 달려 무겁고 지친 다리를 하나씩 옮겼다. 아이들 앞에서 지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들킨 모양이다. 숲 체험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나 포함 26명이 세 잎 클로버 무더기에 쭈그려 앉았다. 무수한 세 잎 클로버 사이에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모두 교실에서와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풀숲 구석구석을 찾는다. 비에 젖어 촉촉해진 흙내음이 참 좋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따스함이 참 좋다.


하나 찾아서 수업 시간에 줄곧 엎드려 있는 귀요미에게 건네주고, 또 하나 찾아서 수업 시간에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는 예쁜이에게 쥐어 준다. 하루 종일 목소리 한 번 듣기 힘든 얌전이의 웃음을 보고 싶어 손에 살포시 쥐어준다. 교실 속에서 제일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교실 밖에 나오니 비를 맞고 생기도는 나무들처럼 생기가 돈다. 작은 네 잎 클로버 하나에 수줍게 미소 짓는 얼굴에 덩달아 나도 미소 짓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생각에 빠진다. 일에 지친 나를 돌아보며, 생각에 빠진다.

일에 지쳤을 때, 꽃반지를 떠올려 보았나?

일이 힘들었을 때,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생기가 돌았던 장소를 생각해 보았나?


세상 일은 참 마음대로 안된다. 특히 일 중에서도 사람과 관련된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 중에서도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교실을 벗어나 각자의 모습으로 생기가 넘친다. 장소를 바꾼 것뿐인데 각기 개성을 뽐내며 자신의 빛을 내뿜는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다. 일에 지쳤을 때, 날 알아봐 주고 나에게 쥐어주는 꽃반지에 절로 힘을 얻는다. 별것 아닌 작은 칭찬, 작은 격려가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운다. 힘들 때 잠시 자리를 비켜 큰 숨을 내쉬면 꽉 막혔던 가슴에 작은 바람길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일에 지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건 커다란 돈이나 커다란 칭찬이 아닌 아주 작은 꽃반지이다.


그 꽃반지가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첫 출근의 벅찬 마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처음 내 손을 쥐어주던 작은 아이의 손가락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일에 지치고, 삶에 지친다. 매일 행복한 웃음을 짓고 사는 사람은 없다. 


일에 지칠 때, 나만의 꽃반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나를 작게 빛나게 해주는 그 순간의 기억. 차가운 공기 속 , 비가 내려 습했던 숲 속, 걱정으로 지친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그 순간의 기억. 그 기억으로 살포시 미소 짓고, 다시 내일의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꽃반지의 향기로 위로받고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은 다시 되돌아 보면,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취직을 하지 못했던 올챙이 적, 내가 정말 행복했던 올챙이 적, 내가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열정을 쏟던 올챙이 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반지에서 나의 올챙이 적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일이 좀 더 행복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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