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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Apr 14. 2021

나이가 든다는 건
설렘이 줄어드는 것

어른 엄마, 어른 교사, 어른 여자

"우와, 진짜 웃겨요. 너무 재미있어요."

"너무 기대되요. 저 꼭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도 많고, 웃기는 것도 많고,

기대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고, 어른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이가 는다는 건 설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원격 수업 중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오늘 너무 피곤해 보여요.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나의 상태를 저토록 정확하게 알다니. 역시 선생님은 아이들의 연예인이다. 사실 연일 계속되는 연수로 인해 너무 피곤했다. 게다가 어제는 길도 잘 모르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 운전해서 다녀오느라 몸살이 났다. 아이들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더욱 밝게 인사했는데, 그 사이 눈치를 채다니 대단하다. 


"아이고. 티났니? 선생님이 어제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연수하러 갔다오는데 길을 몰라서 힘들더라고."


이럴 때 어른들의 반응은 '힘드셨겠어요.', '길찾느라 고생하셨어요.'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우와, 서울대학교는 어떻게 생겼어요? 새로 생긴데에요? 나도 가보고 싶다."


피식. 실소가 나온다.

어쩜 저렇게 매 순간이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을까?


아이들의 질문에 나는 20년 전의 나로 돌아간다. 아빠가 놀이공원에 처음 가자고 이야기 했을 때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처음 가보는 놀이공원에 어찌나 설레던지 밤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놀이공원에서 재미있게 논 것 보다 전날 뒤척이며 설레던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남는다.


이제는 나의 아들에게 놀이공원에 갈거니 빨리 자라고 재촉하는 어른 엄마가 되어버렸다.

아이의 설렘을 뻔히 알면서도 자라고 보채는 어른 엄마. 아이의 설렘보다는 내일 싸갈 도시락과 간식에 정신이 팔려 하나하나 챙기고 있는 어른 엄마.


눈이 올 때는 또 어떤가. 아이들은 창문에 매달려 설렘 가득 나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하염없이 밖을 쳐다본다. 


나는 집까지 운전하기 미끄럽지 않을까, 신발이 더러워 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른 교사가 되어버렸다.

내리는 눈보다 밀린 진도를 나갈 생각에 정신이 팔려 아이들을 재촉하는 어른 교사.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리면 또 어떤가. 아이들은 벚꽃 아래에서 양 팔을 벌리고 까르르 웃는다.


나는 벌써 1분기가 끝났구나, 꽃샘추위가 오는데 코트 맡기지 말걸 후회하는 어른 여자가 되어버렸다.

벚꽃나무 아래에 주차했는데 차가 꽃으로 범벅이 되서 앞이 안보이겠구나를 걱정하는 어른 여자.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 줄어드는 것을 아이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나는 설렘을 간직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걱정이 앞서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무래도 설렘이 줄어드는 일인가 보다.


설렘이 줄어드는 것이 어른이 되는 건가 보다. 그래도 나는 아직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설렘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행복해 하는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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