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나누는 새로운 방법
"쌤 연두 해요 연두 해요"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배움을 나누라고 했더니 신나게 자신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모처럼만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코로나가 없었으면 교실에서 인상을 찌푸렸다가 까르르 웃었다가 하며 들렸어야 할 소리들이 이제는 메타버스 안에서 들리고 있다. 메타버스 안에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칠판 13개를 세웠을 뿐인데, 아이들은 신나서 난리가 났다.
온 책 읽기를 메타버스에서 시도한 이후 일주일 동안은 메타버스를 좀 더 연구하기 위해 수업에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수업 방법이어도 매번 사용하면 아이들은 지치고 금세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온 책 읽기를 메타버스에서 또 하고 싶다고 졸라도 싱긋 웃으며 다음을 기대하라고 했다. 그리고 사실 노파심도 한몫했다. 학습에 대한 흥미 대신 메타버스 자체에 대한 흥미에만 몰두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이라서, 마치 첫눈에 발자국을 남기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단 한번뿐인 소중한 시간들이라 마구잡이로 시행하기엔 조심스러웠고,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집에 와서 메타버스에서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기능들을 살펴보고 수업에 활용할 만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며칠을 씨름해 보니 칠판 기능이 있었다. 함께 작성하는 구글 잼 보드나 줌 주석 같은 활동들은 그동안 많이 활용해와서 익숙했다. 하지만 메타버스 안에서 칠판을 활용하면 보다 수업 실제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협업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배운 내용을 함께 정리해 보는 활동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년에도 모둠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아이들이라 온라인 상에서 모둠활동으로 바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어른들도 함께 협력하는 작업이 쉽지 않듯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상호작용이 거의 없던 작년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협력의 가장 기초 단계인 짝 활동이다. 짝 활동으로 몸을 푸는 활동이 필요했다. 배움을 나누는 짝 활동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메타버스를 새롭게 만들었다. 글씨도 입력했다. 가운데에는 우리가 배운 학습목표를 캡처하여 그림으로 넣었다. 과목은 과학.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나서 아이들이 가장 난항을 겪는 과목이다. 대부분 초등학교의 과학 실험은 모둠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실험 도구 역시 8세트 정도가 최대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공용물품을 활용할 길이 막혔다. 특히 며칠 되지 않는 등교 수업 때 실험을 할 시간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교과서의 대부분이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실험을 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특히 수학이나 영어와 달리 학교 외에서 과학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과학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이 과목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를 메타버스 협업활동을 통해 높이고자 했다. 온도와 기체의 부피와의 관계는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늘 뒤죽박죽이었다. 온라인에서 목이 터져라 설명을 하고,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고, 간단한 퀴즈로 복습한 후에 다음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머리는 백지가 되었다. 다시 또 설명하고, 자료를 보여주고 퀴즈를 풀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백지인 상황이 2번 정도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분명 배웠으나 배우지 못했고, 알긴 했으나 명확히 알지 못했다. 아이들도 나도 답답해지는 상황에 메타버스를 활용해 보고자 했다.
짝을 지었다. 짝은 번호순으로 배열하였다. 물론 수준 차이를 고려하여 내가 몰래 바꾼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걸 따질 겨를 없이 메타버스에서 재잘재잘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을 할 때 새로운 실험기구가 있거나 새로운 도구가 있으면 아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을 5분 준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을 하면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빈도가 확실히 낮아진다.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의 탐구하는 기쁨을 충족하는 동시에 호기심을 해소하여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나만의 작은 수업 비법이다. 재잘재잘 떠들고 싶은 아이들에게 5분 동안 마음껏 떠들어라 했더니 정말 신이 났다. 칠판도 만져봐도 된다고 하니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고 난리가 났다. 약속한 5분이 지났다.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우리가 계속해서 헷갈리는 온도와 기체의 부피를 정리하여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물론 실험관찰에 있는 실험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짝과 함께 익힌 내용을 칠판에 정리해 보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의 활동을 숨죽여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진지한 토론과 정리가 이어졌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논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이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몰입하는 그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배움을 얻은 아이들은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기 마련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말이 없다는 것은 배움을 얻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마음속 깊이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배우게 되면 아이들은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마법 같은 순간이 메타버스에서 찾아왔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언어로 칠판에 어려운 과학 개념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재잘재잘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혼자서 아이들의 자랑을 모두 받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에게 한 명은 칠판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다른 아이들의 칠판을 살펴보라고 했다. 그리고 다 돌아보면 역할을 바꾸어 또 돌아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정리를 신나게 발표했다. 다른 친구의 발표를 들으며 개념은 더욱 명확해졌고, 정교화되었다. 이렇게 칠판 13개를 세운 메타버스 활동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시 모였다.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줌에서 선생님이 혹시나 질문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던 00 이가 눈을 빛내며 말한다. 아이들은 좀처럼 6학년 교실에서 듣기 어려운 저 말이 00 이에게 나온 것을 듣고 웃음이 터졌다. 배움의 기쁨이 메타버스 교실을 채웠다. 이렇게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활동 이후 더욱 판을 키우게 되었다. 아이들이 직접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활동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 활동으로 우리는 EBS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와서 활동을 돌아보면, 코로나로 인해 움츠렸던 아이들이 기지개를 켜게 된 참 소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