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온 책 읽기의 작은 수확
모둠끼리 모여있는 곳에 들어갔을 때 처음 듣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항상 교실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그 누구보다도 밝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교실에 들어오기를 꺼리며 교실문 뒤편에 서있던, 눈에는 두려움이 그렁그렁 담겨있던 그 아이.
교실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다 조용히 가방 메고 하교하는 그 아이.
내가 아무리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눈웃음 이외에는 반응하지 않던 그 아이.
줌에서는 얼굴도 잘 보여주지 않던 그 아이.
정말 그 아이였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메타버스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책을 읽는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혹시 내가 다른 아이를 잘못 봤나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금방 바뀌기도 하지만 금방 바꾸지 않기도 한다. 교육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해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어렵고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메타버스로 공간을 옮겼을 뿐인데 저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교사는 매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다. 조잘조잘 가슴속 말을 몽땅 털어놓고 가는 아이, 온종일 종이만 만지작 거리다 가는 아이, 누구보다 열심히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등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교사가 힘든 아이로 손꼽는 유형의 아이는 말이 없는 아이다. 속상해도 말이 없고, 기뻐도 말이 없으니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친구와 싸워 억울한 상황인 것 같은 데도 말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 도와줄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자신이 잘한 일을 칭찬해 주고 싶어서 되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슬며시 미소만 짓고 있을 때도 애를 먹는다. 1년에 1-2명은 꼭 만나게 되는 아이들이다.
모둠별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협업하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 나와 함께 1년을 보낸 후에는 자신의 표현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야지만 맘 편히 속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안전한 기분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아이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끼게끔 수많은 활동을 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그제야 어렵게 말문을 연다.
기린의 대화법이라는 비폭력 대화에 기반한 내용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회복적 생활교육에 기반한 서클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한 해동안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다. 다양한 프로젝트 속에서도 학급경영에서 놓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이런 인성교육이다.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매우 크다. 아이들의 마음 밭을 일구는 것이 초등학교 교사의 가장 큰 임무 중에 하나다. 그렇기에 말하지 않는 아이도 학급을 안전하게 느끼고 대화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입을 열게 된 아이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모둠활동도 거의 못하고, 교실 내 서클활동도 거의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말이다. 단지 메타버스로의 공간적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온 책 읽기 때 말하기 너무 힘들면 친구들이 하는 것만 들으라고 귀띔해주려고 갔던 참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내 얼굴을 보면 입을 닫을까 싶어서 얼른 카메라를 껐다. 역시나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슬그머니 카메라를 켜고 모른 척 이야기를 꺼내니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는 만족감에서 나오는 미소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들은 소통의 욕구를 항상 가지고 있는데 그게 만족되었다는 것이 화면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메타버스로 옮겨간 수업의 첫걸음이 남긴 작은 수확이었다. 아이에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 준 것이다. 교실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져 하는 일을 놀랍게도 단번에 이루어냈다. 물론 이게 교실에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시작인 반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번 입을 떼는 것이 어렵지, 그 이후에는 조잘조잘 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아이의 인생에서도 굉장한 성취감을 느낄 사건이 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 초등 교육의 현실, 미래 교육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들이 강조되어 보인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미래 교육에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하루 걸러 바뀌는 등교 정책에 정신을 못 차리며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만난 메타버스는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메타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교실에서 드러내지 못하던 존재감을 드러낸다. 교실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고, 교실에서 활용하던 역량과 다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작은 수확을 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함께 했던 아이의 소감이 그날의 작은 수확을 기억하게 한다.
"난 00 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인 줄 몰랐다. 그리고 진짜 능숙하게 메타버스 안을 누볐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걸까?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