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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Nov 24. 2021

당장 만나, 금요일에 만나? 못만나요

내가 꼭 필요한 자리인가 확인하기

"부장님, 저희 메타버스 입상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장 이번주 금요일 2시에 서울역 회의에 참석할 수 있냐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을 보내고 예산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같이 메타버스 연구를 하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왔다. 전화를 해 보니 메타버스 입상했던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언제 어디인지만 말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자리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다짜고짜 금요일에 서울역 회의에서 만나자고 하니 당황해서 일단 논의해본다고 하고 끊었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직접 통화를 해야 정확한 전후사정이 파악될 것 같았다.


전화벨이 울리고 받은 담당자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방금 전화한 사람은 누구냐고 하니, 본인인데 담당자가 오늘 없어 전화를 해 본 것이라고 한다. 당장 자신이 답해 줄 수 없으니 내일 전화를 준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비슷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0000팀 팀장입니다."

팀장이 바로 전화가 왔다. 전후사정이 궁금하여 어떤 맥락의 회의인지 물었다. 먼저 이야기해주지 않고 묻는 것에만 답이 돌아왔다. 까다롭게 보일지라도 자세히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질문 하나에는 정보가 하나만 나왔고,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어본 결과 파악한 맥락은 아래와 같았다.


1. 우리의 수상작을 보고 교육부 담당자가 직접 출력하여 들고와서 이 팀의 소개를 듣고 싶다고 했다.     
2. 본인들이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데 다른 전문가 선생님들이 오시는 회의에 우리의 조언이 필요하다. 
3. 메타버스 구축 경험이 궁금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구축 프로젝트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4. 회의는 당장 금요일 14시 서울역이다.(통화한 날은 그 주 월요일, 서울역까지 가려면 2시간이 걸림.)
5. 15분 소개해주고, 이왕 온김에 3시간 회의에 참석해 달라.
6. 참석비는 지급 예정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질문했다.

"그럼 저희에게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점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띠용. 어떤 자리에 참석을 요구할 때는 참석자가 얻게 될 이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마운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내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것은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내 시간을 항상 소중히 생각하고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자리에만 시간을 내어준다. 새롭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인지, 내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자리인지, 금전적인 이득이라도 있는 자리인지, 명예가 있는 자리인지 등등 말이다. 그런데 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내가 시간을 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불쾌한 기분이 솟아올랐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첫째, 진짜 내가 필요한 자리라면 적어도 2주 정도의 약속 텀이 있어야 했다. 월요일에 전화와서 당장 금요일에 참석을 요청하다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회의들도 아무리 늦어도 2주 전에는 알려준다. 친한 친구와의 만남도 월요일에 전화해서 금요일에 만나자고는 하지 않는다. 특히 교사에게 2시는 수업이 한창 이루어지거나 혹은 수업이 막 끝나는 시간이다. 거기다 우리는 서울역까지 두시간이 걸린다. 그러려면 보결도 넣어야 하고, 그 과정은 사실 쉽지 않다. 그런데 2주일 전도 아니고, 1주일 전도 아니고, 4일 전이라니. 그것도 오후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둘째, 15분 이야기하고 3시간 회의를 참석하라고 했다. 우리는 15분이 필요한 것이고, 나머지 3시간동안 우리는 구경꾼 역할을 하라는 의미였다. 메타버스 관련 내용만 소개해 주고, 나머지 시간은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특히 메타버스 쪽이 아닌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쏟아낼 질문의 깊이와 이해도의 차이가 걱정이었다. 5달 가까이 이루어진 프로젝트를, 소개하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프로젝트를 15분에 요약해서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러려면 그동안 우리가 작업했던 것을 다시 축약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누락되는 내용들로 인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오해가 생길 터였다. 우리의 결과물에 대한 존중없이 간단히 소개만 해주면 된다는 가벼운 말투가 불쾌했다.


셋째, 계속해서 교육부 담당자 이야기를 했다. 물론 모든 교사는 교육부 소속이다. 그런데 교육부 담당자와 교사는 직접적인 상하관계도 아닐 뿐더러, 우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권위에 의존에 설득하려고 했다. 교사를 하나의 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의 하위 직원쯤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 점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으니 내가 못들은 줄 알고 계속해서 그 분 이야기를 들먹였다. 그 분이 직접 가지고 오셨다고. 하지만 그건 요청하는 쪽에서 중요한 분이지, 나에게도 중요한 분은 아니다. 요청하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설득방법이 불쾌했다.


넷째, 참석비는 지급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물어보니 대답했다. 엄청난 선심을 쓰듯 여비는 지급한다고 했다. 사실 15분간의 작은 강의를 요청하는 것이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사가 강의비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강의를 했을 때 보람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럴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단지 아주 작은 첨언을 해주는 존재였다. 우리가 말을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우리가 실천한 것과는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하고 있자니 가슴이 갑갑해졌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우리를 찾아준 곳이 매정하게 거절하지는 못하고,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완곡하게 거절 후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비슷한 번호로 전화가 왔지만 수업중이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정말 우리가 꼭 필요한 자리는 아니었구나. 안가길 잘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요구들에 맞닥드려지게 된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닌 것 같은 직감.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또 내가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의 나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는 편이었다. 누군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이 기뻤고, 새로운 경험이 기뻤다. 그래서 왠만한 제안은 모두 수락했다. 그러나 그렇게 무조건적인 수용 뒤에 남은 것은 상처와 후회였다.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가서 멀뚱히 있는 것은 내가 꼭 필요한 자리에 대한 모욕이었다. 내 시간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내 시간에 대한 모욕이었다. 


물론 그러한 상처와 후회덕분에 이번엔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그 단체에서는 교사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와서 교육활동을 알려야지 이것저것 따진다고 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사가 봉사할 수 있는 대상, 내 월급보다 더 일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아이들 뿐이다. 사실 교실에서 수업을 어떻게 하든 누가 알겠냐만은,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매일의 수업을 준비한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 재미있어 하는 모습 한 번 보려고 말이다. 그런 교사에게 당장 금요일에 만나자고 이야기를 하다니. 그것도 저런 식으로. 교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장 만나. 금요일에 만나? 못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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