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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Nov 15. 2021

(크고 단 참외 없다)누구나 어느분야에서는 부진아다.

부진아라는 단어에 대해

"선생님은 아무래도 한 학기 더 수강해야 될 거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백화점 문화센터 한 텀이 종료되면서 들은 말이다. 내가 봐도 무언가 성장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대학교에 들어가 1학기를 지나자 화장을 배우고 싶었다. 모두들 멋지게 꾸미고 다니는데 나만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워 보였다.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백화점 문화센터 화장 강습을 3개월 등록했다. 이미 수능이 끝나고 문화센터에서 동화구연을 배워봤었고, 만족도도 높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꾸미는 것이 참 어렵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해야 할지, 어떻게 화장을 해야 예쁜지 잘 모르겠다. 다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인다. 그런데 멋지게 꾸민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름 부단히 애를 쓰지만 내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외모를 가꾸는 일이다. 남들 다 난리라는 사춘기 때도 화장은커녕 옷도 그냥 엄마가 사주는 대로 입고 다녔다. 그래도 뭔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어른답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무엇이든지 배우기 좋아했기에 이번에도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로 들어갔다.


  기대하던 첫 시간, 선생님이 등장했다. 강사님은 정말 반짝거렸다. 화려한 화장, 화려한 복장, 화려한 브로치. 어색함 없이 저 사람은 잘 가꾸는 사람이구나! 멋진 사람이구나! 의 아우라가 퍼져나갔다. 나는 설렜다. 나도 곧 저렇게 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시간부터 절망했다.


  첫 시간은 세안하는 방법이었다. 손에 클렌징 폼을 덜어주고 거품을 내는 법을 알려주셨다. 클렌징 폼을 사용할 때 그냥 손에 막 비벼서 사용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두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고, 또 한 방울 떨어뜨리고 살살 문지르며 거품을 내는 거라고 했다. 선생님은 정말 순식간에 풍성한 거품을 만들었다. 나도 시도해보았다. 결과는 역시 참패였다. 물을 많이 넣어서 거품이 내기도 전에 클렌징 폼이 떠내려갔다. 다시 또 시도했지만 이번엔 또 물을 너무 섞지 않아서 거품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냥 한 시간이 끝났다.


  그런 식으로 아이라인 그리기는 양쪽 균형을 맞추다가 판다가 되었고, 기초 바탕 깔기는 너무 많이 화장품을 발라 가부키 화장이 되었고, 입술 그리기는 텐트를 너무 많이 발라 입술만 떠다녔다. 머리 스타일링 시간에는 정말 사자머리가 되었다. 드라이와 빗은 따로 놀았고, 매직기는 내 머리에 굴곡을 더해줄 뿐이었다.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연습을 해보아도 크게 나아지는 점이 없었다. 정말 문화센터를 가기 싫었다. 내가 모든 걸 잘하는 건 아니어도 지금까지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 되었었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었다. 추천하는 화장품을 사고, 연습하고, 절망했다. 다시 시도하고, 연습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3개월이 흐른 뒤 짜잔! 이제 저는 화장을 잘해요!라고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난 그냥 제자리였다. 결국 선생님의 입에서 한번 더 수강하라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난 그때 기억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재수강을 포기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감추고 싶은 창피한 기억은 첫 해 우리 반 부진아를 만나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첫 해 맡은 3학년, 3학년인데도 덧셈 뺄셈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1+2도 손가락을 꼽아야 할 수 있었다. 8+9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다.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숫자를 세면 되는데 왜 못 세지?"

"아니 이걸 그려서 세면 되는데 왜 못하지?"

"이게 왜 어렵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다. 특히 황당한 것은 진전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늘 잘 가르쳐서, 잘 풀어서 뿌듯한 마음으로 칭찬으로 마무리하며 보낸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다시금 백지가 되어 모른다. 다시 인내심을 가지고 잘 설명하고 잘해서 칭찬으로 마무리하며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은 다시 백지. 이게 일주일이 반복되니 절망감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항상 온몸으로 분위기를 읽는다. 그 아이도 나의 그 절망감을 읽었는지 점점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그 아이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클렌징 폼 거품을 내다 문득 깨달았다.


'아! 저 아이도 내가 화장이 어려운 것처럼 계산이 어려운 거구나.'

'계산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후,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다음날 그 아이와 공부를 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선생님도 화장 진짜 못해. 화장 선생님이 더 배우라고 했는데 포기했어.

  근데 내가 집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니까 조금은 잘해지더라."


   그 순간 아이는 수줍은 듯, 비웃는 듯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걸 다 잘할 것 같은 선생님도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 것 같았다. 부진하다는 걸 인정하고 조금씩 나아지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눈에 띄게 실력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가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다.


  사실 사회에 나오면 공부는 우리가 가진 수많은 능력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가진 수많은 재능들은 공부라는 단어 아래 숨어들 수밖에 없다. 공부를 못한다고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지 못할까? 공부를 못한다고 그 아이의 인생은 실패한 걸까?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단연코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학창 시절 중 공부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의 거쳐가는 과정이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다. 그건 사실 화장이나 다른 기술들도 마찬가지다. 잘하면 인생에서 유리하긴 하다. 공부라고 다를 것은 없다. 그런데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제일 중시하기 때문에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구나 알듯이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누구나 어느 분 야에서는 부진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못하는 것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이들이 부진을 딛고 조금씩 성장하듯이, 그렇게 어른들도 부진을 딛고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부분을 성장시키려는 노력이 결국 나 자신 전부를 성장시킬 수 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의 수줍은 듯, 비웃는 듯한 미소가 생각난다. 교사가 처음 되었을 때의 나는 아이들 앞에서 제일 멋진 교사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잘 해내는 교사,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교사.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 옆에선 편한 교사가 되고 싶다. 못하는 것도 드러내고, 너희와 같이 노력하고 있다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교사.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인정하고, 매일 나아지는 나의 모습으로 웃을 수 있는. 


  누구든 어느 분 야에서는 부진아다. 그것을 인정하고 노력할 때 더욱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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