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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맹샘 Dec 02. 2021

(세 살 고민 여든 간다) 고민의 끝없음

세 살 버릇뿐 아니라 고민도 여든 간다.

"부장님~그때 이미지 카드는 어디 거였어요? 올해도 같이 근무하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모처럼만의 반가운 전화가 왔다. 작년 우리 옆반 선생님이었던 선생님의 전화였다. 나보다 1살 어리지만 꼬박꼬박 부장님이라고 부르던 예쁜 선생님이었다. 항상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함께 하자고 하면 누구보다 눈이 반짝였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함께 더 근무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추운 겨울날 내 마음속 깊이 따뜻한 불을 지폈다. 함께 공부하고 사용했던 이미지 카드가 문득 나를 떠올리게 했었나 보다. 그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나의 신규 때 교직생활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신규 때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였다. 이 고민은 사실 첫 발령 때 나의 첫 동학년 선생님들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난 신규 때 정말 좋은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났다. 한 분은 퇴직을 2년 앞둔 선생님이셨고, 또 한분은 우리 엄마와 동갑인 선생님이셨다. 지금도 만나면 손을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우는 참 고맙고 소중한 선생님들이다. 힘들 때면 생각나고, 좋을 때면 자랑하고 싶은 정말 마음속 고향 같은 선생님들이시다. 가정사도 속속들이 알고, 만나거나 통화를 하면 가족의 안부부터 묻는 살가운 사이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사실 교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용고시에 붙느냐는 것이다. 임용고시에 붙어야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때문에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다.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기나긴 신규 연수를 한다. 신규연수가 끝나면 3월에 바로 교실로 던져진다. 신규 연수는 말 그대로 연수라서 많은 선생님들이 노하우를 전수해 주시지만, 합격의 들뜸과 발령의 두려움으로 연수내용이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교생실습 경험이 전부인 신규들은 아이들 30명이 있는 교실로 던져져 바로 수업과 학급경영을 시작한다. 


눈을 뜰 때마다 사실 두려웠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있지만 내가 가르치는 이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단 한순간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내가 나눗셈 3차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평생에 있어 나눗셈 3차시를 배우는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진짜 선생님이긴 한 건지 매일 의심이 들었다. 그때마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나의 고민을 들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교직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수평한 관계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학년에서 같은 교육내용을 가르치며 이루어지는 동학년은 수평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부장이라는 칭호는 있고, 그에 따른 업무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고민하는 교육공동체이다. 고민도 나눌 수 있는 관계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A부터 Z까지 이야기해야 하지만, 동학년은 아무 맥락 없이 T만 이야기해도 무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호작용에서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선생님들도 분명히 바쁘셨을 텐데 난 진짜 교실 문턱이 닳도록 가서 묻고, 또 가서 물었다. 그래도 한 번의 찡그림 없이 웃으면서 알려주시고, 진심으로 걱정하며 격려해 주셨다.


이제 내가 부장이 되어보니 그때 그 선생님들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좀처럼 끝나지가 않는다. 오히려 고민이 점점 커진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

내 자리에서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있는 것일까?

다른 동학년 선생님들께 내가 도움이 되는 부장일까?


이런 고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직장생활이 길어질수록 난 내가 더 능숙해질 줄 알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고민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교직생활 11년 차인 지금 고민이 훨씬 늘었다. 신규 때는 잘 몰라서 했던 일들이 11년 차가 되니 눈에 보이고 고민이 더 깊어진다. 특히 동학년에 다른 선생님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때 참 힘이 든다.


얼마 전 학년회의방을 잘 보지 않고 다른 학급과 같은 시간에 임의로 수업 재료를 가져가서 다른 반을 곤란하게 한 선생님이 계셨다. 사실 그렇게 화를 낼 만한 상황도 아닌 데 정말 화가 났다. 아마도 그 이전에 했던 행동의 어긋남들이 쌓였던 것 같다. 난 동학년이 함께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분은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행동을 했다. 그게 내심 내 스스로의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연구실에서 마구 툴툴대고 있었는데, 그때 옆에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께서 빙긋 웃으시더니 말하셨다.


"아이고. 착각했나 보네. 내가 조금 늦게 하면 되지 뭐. 전화해서 한 번 이야기는 할게"


머리가 띵했다. 세상에. 난 아직도 멀었구나. 난 아직도 저런 마음을 갖지 못하는구나. 사실 그랬다. 조금 늦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도 다른 선생님들께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해서 화가 났다. 제대로 학년회의방을 살펴보지 않음에 화가 났다. 그런데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나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에게만 관대한 선생님이 아니라 동학년 선생님들께도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이 때는 나보다 먼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행동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고민은 끝이 없지만 그 고민의 해답은 내가 가는 길을 지났던 사람에게 들을 수 있다. 사실 바빠서 놓칠 수도 있는 것이고, 학년보다 내 학급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난 내 가치관에 다른 사람을 끼워 맞추면서 혼자 화를 내고 있던 것이다.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느끼며 다시금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문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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