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통해 발견한 나
코칭을 배우고 자격을 취득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여는 대화는 여전히 낯설었다. 숫자의 성과 지표를 다루던 직장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결의 대화였다. 경청, 질문, 공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코칭을 안전한 영역의 대화 기술로 이해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조직 안에서 역할과 책임이 분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결이 조금 다른 대화. 리더로서 조금 더 잘 돕기 위한 기술, 혹은 관리의 연장선에 있는 방법 정도로 여겼다. 코칭은 질문으로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내담자를 만나게 되었다. 직장인이 아닌, 조직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온 분이었다. 몸과 마음의 어려움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고, 삶의 목표는 희미해져 있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며,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다. 과거의 시간에 오래 머물러 있던 분이었다.
코칭 제안이 오고 가던 상황, 사실 코칭 시작 여부 결정도 쉽지 않았다. 그 당시 초보 코치였던 나는 문득 이런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걱정스럽게 묻고 있었다. 부족한 코칭 경험으로 혹시 내담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 당시의 나 역시도 삶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던 터라, 누군가의 삶을 돌아본다는 것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묘한 감정의 연결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두려움을 안고, 경험 많은 두 분의 코치에게 코칭을 받았다. 코치로서 부족한 내가 이 코칭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주제였다. 그중 한 분이 이런 말을 건넸다.
“내담자가 코치를 준비시킵니다. 경험 부족 걱정보다는, 코치님 자신을 한번 믿어 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두 번의 코칭 대화를 거치며, 나는 내 안의 두려움 이전에 누군가에게 보낼 도움의 손길이 먼저 떠올랐다. 걱정으로 물러서기보다, 한 발 나아가 보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생각은 내 두려움을 단번에 지워주지는 않았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주었다. KAC 자격을 취득한 지 한 달 만에 실전 코칭이 시작되었다. 직장에서 도피하듯 MBA에 온 이후,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어떤 주제로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지요?”
“...”
긴장되는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코칭의 기본 틀을 따라 배운 대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돌아보면 일부 질문들은 너무 교과서적이었다. 틀리지 않으려 애쓴 질문, 안전한 질문이었다. 다음 질문을 무엇을 할지 미리 고민했다. 긴장한 나머지 내담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무슨 질문을 할지에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런데 대화는 번번이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앞으로의 방향을 물으면 과거의 기억이 쏟아졌고, 계획과 실천을 이야기하려 하면 그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았다. 현재를 다루다 보면 병원의 기억과 오래된 아픔들이 따라 나왔다. 이 코칭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래 미뤄두었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 과정처럼 흘러갔다. 한동안 코칭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처음에는 갓 배운 초보 코치답게 코칭 대화의 틀을 의도적으로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대화가 오고 갈수록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코칭 대화 구조는 지키되, 편안히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그냥 내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로 했다. 대화의 침묵이 길어져도 질문을 건네기보다는 조용히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솔직히 말하면, 대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조직에서의 코칭과는 전혀 다른 무게가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한 사람의 삶을 깊이 마주한다는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내담자의 아픔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고, 상황이 극적으로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더 이상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답을 주려 하지 않았고, 방향을 정해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너무 이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코칭이라기보다, 그냥 제 인생 이야기하는 시간 같아요.”
그 말은 오래 내 머릿속에 남았다. 이 대화는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이미 멀리 와버린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다시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코칭은 앞으로 가는 대화이지만, 때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때로는 코칭답게, 때로는 코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분의 삶을 대신 해석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코칭의 목적만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힘겨운 대화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천천히 변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력에 머물러 있던 삶을 다시 변화시키고 싶다는 말이 나왔고, 건강을 돌보고 싶다는 의지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삶의 전환 이전에 분명한 방향의 변화였다. 무심코 심어두었던 대화의 씨앗이 어느 날 조용히 변화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코칭 대화는 이어졌다.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결심, 그리고 그 선택을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중심에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장기간의 코칭은 종료했지만, 그분의 삶의 전환 도전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놀라운 변화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삶의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 자신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타인의 삶의 변곡점에서 나의 지난 시간이 더해지며 생각의 깊이를 더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소환하며 나는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내 현실의 아픔을 타인의 과거 속에서 의미를 연결하고 풀어갔다. 코칭을 통해 내담자가 아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경험이었다.
MBA에서 배운 코칭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은 질문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도를 존중받을 때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코치의 인내와 배려가 진심으로 닿을 때, 내담자의 변화 동기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배움은 설명될 때보다, 삶에 닿을 때 비로소 작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어려운 만남은, 나를 더 흔들기보다 오히려 나를 정돈해 주었다. 조직에서의 상실과 불안, 다시 학생이 된 나 자신의 흔들림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삶 앞에 서며 내 중심을 다시 붙잡고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을 마주할수록, 통제하려 들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고 있었다.
코칭은 나에게 틀을 주었다. 그리고 이 코칭 경험은 그 틀이 사람 앞에서는 언제든 느슨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성과와 결과로 나를 설명해 왔던 나에게, 이 배움은 전혀 다른 공부였다. MBA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운 것은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 태도였다. 그리고 어떤 배움은 계획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순간에 삶을 통해 건너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만남 역시 우연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 의미를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차릴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이 자신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그 시간을 함께 견디려 한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직장 생활의 혼란이 남긴 마음의 상처를 천천히 치유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 코칭을 통해 얻은 가장 깊은 깨달음이다.
코칭은 상대방을 향한 대화이지만, 동시에 코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코칭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다음 글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