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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맥스 Apr 08. 2024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5)

   어린 시절은 홀로 조용히 자랐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주변에 든든한 친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슬퍼하거나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활했으니까요. 가끔씩은 엄마 아빠가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런 그리움은 점점 잊혀 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꽤 높은 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런 전망이 멋진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곳까지 가서 살게 되었는지도 잘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곳 경치가 어땠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커가면서 그곳의 경치가 멋지다는 것을 아주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보이는 새로운 경치에 그곳이 점점 마음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될 동안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사계절을 여러 번 보내면서 제 키도 제법 자랐습니다. 이제는 튼튼해지는 제 몸을 보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또 많지만 그런 세월을 충분히 살아갈 용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의지하며 세월의 풍파를 잘 이겨내 왔습니다.

   봄이 되면 새들이 지저귀면서 날아다니고 이쁘고 귀여운 봄 들꽃들을 보면서 힐링합니다. 누렇게 변해버렸던 풀들이 따뜻한 봄바람에 녹색 잎으로 다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참 신비합니다. 추운 겨울 동안 이렇게 많은 새싹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사실 저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봄을 맞이합니다. 행복한 상상을 하며 녹색으로 변해가는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봅니다.





   어느 여름날 살면서 큰 위기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한밤중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한 여름 태풍이 불어왔습니다. 온몸을 휘감은 태풍은 저를 날려 버릴 듯이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잠시 방심하면 큰일이 납니다. 있는 힘껏 버텼습니다. 그런데 버터던 저의 팔 한쪽이 부러졌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하지만 세차게 내려치는 비바람 속에서 아플 겨를도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끔찍한 밤이었습니다.

   날이 밝아 왔고 저는 제가 다친 아픈 팔을 생각하기도 전에 주변 가족들과 이웃들을 살펴봤습니다. 키가 큰 어른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오히려 키 작고 연약한 어린 친구들이 멀쩡히 잘 버텨 내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팔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제 다친 팔이 의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산골에는 의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친 팔을 치료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혼자 이겨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 아픔은 아물어 갔습니다. 지금 저의 팔 모양이 이렇게 생긴 이유가 그날 밤의 악몽 때문이었습니다.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계절이 또 지나고 저는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서서히 늙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태어난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해지던 어느 날 끝이 없을 것 같던 제 삶의 마지막 시점이 찾아왔습니다.

   언제 마지막 숨이 멈출지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 고통도 없습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제 몸의 수분과 영양분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한 나날들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슬퍼졌습니다. 인생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끝이라고 생각했던 제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이제는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신기한 사후 세계를 맞이하였습니다. 희로애락의 기나긴 생활을 마감한 뒤에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모습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볼 때만 저의 의미가 생겨나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면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리산 제석봉에 우뚝 서 있는 이름 모를 고사목입니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드림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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