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람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바람을 보면서 몰래 흠모하곤 하지요. 그런 바람은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길을 갈 뿐이죠. 그저 그의 환한 미소를 몰래몰래 쳐다만 볼 뿐입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혼자만의 바람 짝사랑을 하고 있답니다.
해가 뜨는 낮에도 여전히 저의 바람 사랑은 계속됩니다.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도 저는 오직 바람만을 생각한답니다. 밝은 대낮에 어찌 이리도 저의 마음은 그에게만 향해 있을까요? 바람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서 술래잡기하듯이 그런 숨바꼭질이 계속되었답니다.
이런 바람 사랑을 저는 노래로 표현합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또 때로는 웅장하게. 저의 노래는 참 다양합니다.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들으러 오기도 합니다. 잔잔하고 서정적일 때 사람들은 한참 동안 제 주변에 앉아서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머리를 마주대고 그윽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이 있으면 저는 좀 더 열심히 노래에 집중한답니다. 그 사랑이 영원하도록 말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참 다양합니다. 동네 어귀의 바닷가, 외딴섬의 큰 바위, 아니면 사람들이 모여서 휴양을 즐기고 있는 바닷가 모래밭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긴긴 세월 동안 저는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바위, 돌 그리고 모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밀당입니다. 밀당의 귀재라고 불렸습니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다가도 이내 사라져 버리고, 사라진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서 또 잡힐 듯 다가옵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그 누구에게도 붙잡혀본 적이 없습니다.
제 친구들인 바위와 돌, 그리고 모래들은 언제나 저를 반겨 주지요. 하루에도 수십 또는 수백 번 제가 나타났다 사라져도 항상 반갑게 맞아 준답니다. 제가 나타날 때면 모두가 긴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여리게 또 어떤 때는 강하게 화를 내는 것 같으니, 저를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용히 나타날 때는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순해서 모두가 저와 함께 노래한답니다. 규칙적인 리듬을 탈 때도 있고 엇박자를 일으키며 매번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밀당하며 노래할 때 저는 행복합니다. 친구들도 제가 싫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바람과 크게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도 저도 화가 굉장히 많이 났었습니다. 분노에 차서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이성을 잃고 친구들에게 몹쓸 짓을 했지요. 친구들을 세차게 마구 때려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때 제가 너무 세게 친구들을 때리는 바람에 다치는 친구도 생겼습니다. 푹 파여 버린 돌과 모래들을 볼 때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이성을 되찾았지만 이미 다쳐버린 친구들이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세게 일어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작아져 버린 제가 불쌍하기도 합니다. 혼자 바람 짝사랑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이 지구가 태어난 직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열심히 바람을 사랑해 왔습니다. 항상 그를 보면서 제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저의 바람 사랑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언젠가는 바람이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겠지요?
저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파도입니다.
[Story 2]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와 본 곳만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멋진 친구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지요. 저는 그런 삶이 너무 좋고 행복합니다. 저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제 모습을 정확히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행하다가 가끔 제가 창문에 붙어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기도 합니다. 창문에 붙어서 가만히 있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장난스럽게 미끄럼틀 놀이를 하며 미끄러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저를 보면서 사람들은 개구쟁이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봄기운이 감도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겨우 내 얼어붙어 버린 대지는 서서히 봄기운에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얼어붙은 땅과 물은 그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말라버렸던 나무줄기들에서 녹색의 잎들이 비집고 나오고 있고 곧 꽃망울이 터질 듯 불그스름한 빛이 묻어 나옵니다. 이맘때쯤 저도 활동을 시작합니다. 저를 기다리는 많은 친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해의 풍요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누군가는 얼어붙은 겨울의 찬 기운이 밀려나는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저를 기다리곤 합니다.
저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늘을 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하늘을 날지 못하면 제가 아니죠. 그러나 제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날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다 보면 또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됩니다. 날아다니는 많은 친구 마주 대하면서 몸집을 키워 갑니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에서 놀다 보면 무거워진 몸집 때문에 지쳐서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이제 진정한 제가 태어나는 것이죠.
저는 변신의 마법을 부립니다. 투명하고 말랑말랑하다가도 변신 마법을 쓰면 하면 그 형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게 사라진 저는 멀리 그리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몸을 가볍게 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기분이 그만입니다.
이리저리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가 봅니다. 보통 제가 날아다니는 날은 공교롭게도 시야가 흐려서 멀리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왜 이런 날만 비행하게 되는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까딱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착륙 시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고도를 낮춥니다. 제게는 사뿐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땅에 속도도 줄이지 않고 착지를 시도합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웃기기도 합니다. 제가 착지를 하면서 온몸이 찌그러져서 웃긴 모습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아프거나 다치지 않는 건 참 신기합니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람들은 봄이 되면 저를 많이 생각합니다. 하늘을 보면서 날아다니는 저를 붙잡아 보려고도 하고 다정하게 껴안으려고도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죠.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저는 늘 걱정스럽습니다. 혹시라도 아프거나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말입니다. 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름이 되면 무더위 속에서 사람들이 지쳐 갑니다. 그럴 때 제가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위안이 되곤 합니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귀한 손님으로 때로는 천덕꾸러기 같은 느낌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나타날 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뭐 그래도 저는 별로 신경은 안 씁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어떤 날은 제가 무척 커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살이 쪄서 통통해진 저를 보면 좀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꼭 이럴 때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저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상황이 아니니 저도 따를 수밖에 없는 거죠. 부디 저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