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이탈리아 여행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이탈리아의 마지막 여행지인 물의 나라 베네치아로 이동했다. 지금까지의 이탈리아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탈리아를 알아가는 동안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운 마음도 함께 커져만 갔다.
영어식으로 베니스(Venice)로도 친숙한데, 이탈리아어로는 베네치아(Venezia)로 불린다. 베네치아로 들어가기 위해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배에 승선했다. 카프리 섬 이후 다시 배를 타고 이동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구글 포토에서 베네치아 전역에서 찍은 사진을 위치별로 정리한 것이다. 지도와 오버랩해서 다녀온 곳의 사진을 보니 이동 동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물에 둘러 싸여 있었다. 물의 나라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가 있다. 바다 위에 건설한 도시였고, 곤돌라라는 작은 배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달리는 배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달리는 배의 모터 소리가 시끄럽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배가 가르는 바닷물에서 하얗게 물보라가 일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는 배에서 잠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베네치아의 수상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사된 햇빛이 찰랑거리는 바다 너머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상 주택들이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에 온 것이다. 곧 물에 잠길 것만 같은 건물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떻게 여기에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했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바다 뱃길을 따라 펼쳐진 수상 가옥과 건물들 감상에 빠진 사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여느 도시의 바닷가 풍경이었다. 바닷가를 따라서 길이 나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느 일반 해안 도시의 풍경이었다.
베네치아 도심 내부로 걸어 다니며 좀 더 자세히 보니 정말 신기한 도시였다. 이미 많은 설명을 듣고 온 터라 충분히 상상은 했었지만, 실제 건물들을 가까이서 보니 이건 상상 이상의 괴이한 도시였다. 진짜 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주택들이 즐비했다. 어떻게 바다 위에 이런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했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매년 도시 전체가 조금씩 침수되고 있다고도 했는데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도 미스터리 한 부분이었다.
수상 도시에 걸맞게 이동 수단은 배였다. 다양한 종류의 배가 있었다. 일반 보트도 있었지만 곤돌라라는 작은 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긴 노를 이용해 이동하는 방식인데 건물들 사이의 좁은 수로를 이동하기에 최적화된 배 종류였다. 직접 타 보지는 못했지만 베네치아 도심을 가까이에서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기도 했다.
해안을 따라 길게 나 있는 길거리 광장에는 이름 모를 장군 동상이 멋지게 서 있었다. 칼을 빼 들고 말을 탄 장군이 지금이라도 달려 나갈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걷다 보니 특이한 창살을 가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감옥이었다. 베네치아의 감옥이 유명하다고 한다. 두칼레 궁전 옆에 있는 죄수들을 가두었던 감옥인데, 쇠로 된 거대한 창문이 감옥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탈출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가장 유명한 '탄식의 다리'이다. 죄수들이 이 다리에서 탄식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감옥 가서 탄식을 했던 사람들은 과연 개과천선을 했을까? 죄수들의 탄식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했다. 어느 곳이나 죄수들은 있고, 예나 지금이나 죄짓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감옥인가 보다. 죄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산 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산 마르코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종탑이다. 산 마르코 광장의 시그니처 건물이다. 이 종탑도 너무 높아서 한 번에 사진으로 담기 쉽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우뚝 선 종탑이 여기가 베네치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다 위에 세워진 수상 도시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 인근에는 산마르코 대성당 있다. 829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Saint Mark)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건립했고, 비잔틴(Byzantine)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자유 시간에 산 마르코 광장 인근의 상가 골목으로 이동했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이었는데,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의 좁은 골목 상권이었다. 나름 운치가 있었다. 마치 부산의 남포동 시내 상가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유리 공예품을 팔고 있는 한 상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이쁜 유리 공예품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넋 놓고 쇼윈도에 시선을 뺏겼다. 각양각색의 유리 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들이었다. 마치 예술품 전시회를 보는 듯했다.
저 수많은 유리 공예품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곤돌라를 타고 있는 '붉은 악마'였다. 어찌나 귀엽고 이쁜지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봤다. 곤돌라 탄 붉은 악마가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유럽 여행 중에 사 오지 못해서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세 번째 기념품이다. 왜 그 당시에 구매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다.
이 골목에는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는데 다른 관광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기념품들이 많았다. 전시된 기념품들이 그냥 하나의 작품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쇼핑만 하다 결국은 그냥 사진만 남기고 왔다. 박물관에라도 진열해야만 할 것 같은 축소 모조품들이었다.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듯했다.
자유 시간에 이곳저곳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팠다. 눈에 들어온 랩(햄, 토마토)인데 허기를 달래기에는 그만이었다. 맛도 좋았고 양도 제법 되어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짧은 시간에 돌아본 베네치아였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베네치아를 떠나는 배편에 올랐다.
베네치아 여행 마지막 단계에서 이번 유럽 여행 중 처음으로 가이드 쪽과 트러블이 발생했다. 베네치아에서 다시 육지로 나가는 배편을 가족 별로 원하는 종류를 선택하라고 했다. 기본 옵션은 처음 들어올 때 타고 들어왔던 배편이고, 추가 옵션은 수상 택시인데 베네치아를 관람하면서 나갈 수 있는 두 가지였다. 두 번째는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충분히 베네치아를 둘러봤다고 판단했기에 처음 들어올 때 배편을 그대로 이용해서 나가겠다고 의사를 전달했다.
다른 가족들의 의견을 다 모아 보니 우리 가족만 추가 비용이 없는 배편을 이용하겠다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부터 베네치아 현지 가이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우리 가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설득이 아니라 기분 나쁜 강요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배편을 선택한 우리 가족을 모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반대편에 서게 했다. 다른 가족들과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돈 몇 푼 되지도 않는데 수상 택시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다른 가족들 앞에서 우리의 결정이 창피하다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동안 기분 나쁜 말들로 우리 가족을 자극했다. 돈 몇 푼에 짠돌이 가족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분명 자율적인 결정을 하라고 해 놓고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추가 요금을 내고 다른 가족과 함께 배에 올랐다.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베네치아 관광을 마친 그날 저녁에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가이드에게 항의를 했다. 그런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이의 제기를 하라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더 기분이 상했다. 현지 가이드의 태도도 기분이 나빴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인솔 가이드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해를 구하는 대화를 주고받았으면 그리 기분이 상할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본사에 부당하게 강요를 받았던 사례를 전달했고, 현지 가이드의 불친절했던 상황에 대해 불만을 알렸다. 수많은 유럽 여행객들이 비슷한 피해를 입을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여행사는 그 당시 상황 파악을 하고 미안하다는 회신을 해왔다. 물론 수상 택시 추가 비용도 환불을 받았다. 그렇게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해외여행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여행에서 좋았던 부분 외에 리얼한 상황을 남기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내용을 남겨본다. 오랫동안 잊혀 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이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에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매력을 가진 베네치아였다. 물의 나라를 떠나 오면서 이탈리아 여행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시 가고 싶은 이탈리아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았다.
(2018년 감성 충전, 유럽 이야기 by 드림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