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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필방 29화

K가 보고 싶어(12)

재미있는 만화를 소개합니다 <습지생태보고서>

by 권수아

<습지생태보고서>는 거북이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왼쪽의 것이 내가 산 책이고, 오른쪽의 것이 도서관에 있는 책이다. 내용은 모두 똑같지만, 겉이 다르다. 어쨌든, 이 책은 2005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습지생태보고서>를 모아 만든 결과물이다. 여기서 '신문연재만화'라는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2000년대 중반의 만화 시장은 지금의 만화 시장과는 그 양상이 달랐다. 웹툰 시장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반면, 그때에는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랬기에 신문연재만화 시장 규모가 컸다. 하지만, 웹툰과는 달리 신문연재만화는 지면의 문제가 있었다. 한정된 지면을 염두에 두고 작품 연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습지생태보고서>도 두 편의 프롤로그와 무려 쉰넷 편의 단편 만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 만화들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되어있다. 특히 최군과 윤정의 연애담이 주 내용인 '#24: 수박 된다', '#25: 1%', '#26: 농담?', '#27: 남들 다 하는 것', '#28: 그녀는…', '#29: 이미 과거', '#30: 확인 사살'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이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24: 수박 된다'와 '#25: 1%'를 소설 형식으로 바꾸어 써보려고 한다. 최군을 주인공으로 삼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보겠다.


툭, 잘 사는 친구 한 놈이 정장 한 벌을 내려놓았다. "이거 한 번 입어 봐라." 소개팅을 대신 나가라뜻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얻어지는 단편적 정보로 그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 그리고 그 결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만남. 이거 너무 변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냐? 그런 변태적인 공간에서 한 인격체를 앞에 두고 못생겼으면 후회하고 예쁘면 어떻게 잘 보여 볼까 고민하고 있을 나를 보고 싶지 않다." 나의 이런 진지한 말에 친구의 가벼운 한마디가 나를 긁었다. "예뻐, 걱정 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 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개팅 한 번 하라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해?" "네가 너무 단순한 거얌마." 하지만, 나는 친구의 한마디로 내키지 않는 소개팅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친구 신용을 위해 한번만 희생해라. 그동안 뒤져 먹은 밥값 계산하기 전에." 그렇다. 나는 소개팅을 거절하기엔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 어쩔 수 없이 "겉모습 안 본다면서 이런 건 왜 입으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삼 대를 이어 온 빈티가… 어디로…"라고 구시렁대며 그 정장을 입는데… 오잉? 거울 속의 나는 내가 보아도 멋져 보였다. 옷을 멀끔하게 입으니 태가 나는구나. 그렇게 나는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소개팅은 빈곤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급 차들이 빼곡한 낯선 동네…. 익숙지 않은 분위기의 낯선 찻집…. 유복한 가정에서 티 없이 자랐을 듯한 매우 예쁜 여자… 그 여자는 내게 말했다. "정장이 굉장히 잘 어울리시네요?"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버린 남자인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빌려 입은 겁니다. 고등학교 교복 이후로 십만 원 넘는 옷은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듣고 "푸후후후!"하고 웃는 그 여자. 나는 쏘아보며 그 여자에게 "왜 웃습니까? 농담 아닌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당돌했다. "원래 표정이 그러세요?" "……" "첨 볼 때부터 웃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으실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오. 전 그쪽이 맘에 드는데… 제가 별로 맘에 안 드시나 봐요?" '어라? 그녀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 매력의 60%는 외모에 의한 것이고, 39%는 유복한 성장환경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1%에 반한 거야!!'라는 속마음으로 결국 "저도… 맘에 들어요."라고 웃으며 말하게 만든 그 여자. 그 여자는 담 삼아 "느끼해요. 그냥 웃지 마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에 최군과 윤정의 연애는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으면 좋겠다. 최규석 작가는 <습지생태보고서>를 두 번째 만화책으로 낸 뒤에(그의 첫 번째 만화책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이다.), <대한민국 원주민>, <100℃>, <송곳>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여러 작품들 중에 <습지생태보고서> 역시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 이 작품 <습지생태보고서>의 일부를 소설화한 이유는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소개를 받은 사람들이 번쯤은 <습지생태보고서>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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