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K는 증발하였다. 나는 많이 허전했다. 도무지 학교에 다닐 맛이 나지 않았다. 휴학계를 냈다. 휴학하는 동안 내가 주로 한 것은 여행과 독서였다. 내가 2011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가 있다. 당연히 K를 잊기 위해 한 여행과 나를 다독의 길로 이끌어준 결정적인 책 <책 먹는 여우>와 관련된 글들도 블로그에 있다. 여기에서는 그 글들을 수정을 거쳐 올리도록 하겠다.
제목: 열흘간의 국내 여행 #10 다시 서울로
열흘간의 국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틀 동안은 인천과 수원을 지하철로 여행하였고, 일주일은 내일로라는 한국철도공사에서 발매하는 연속 7일 동안 무제한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철도 교통 패스를 이용하였고, 하루는 집이 있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꼭 열흘인 것이지요. 여행 가기 전에 <대한민국 도시여행>이라는 책 한 권을 챙겼습니다. 이 책에 나와있는 대로 우리 땅 대한민국 도시의 길들을 거닐었습니다. 저는 제 느낌을 틈틈이 공책에 적었습니다. 또, 공책의 글들을 블로그에 올릴 계획입니다. 이 글을 여러분이 본다면 저의 일기장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겠죠. 사실 몇 달 전부터 여행을 갔다 오라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제게 여행을 추천한 사람들은 "당신, 요즘 많이 위태로워 보여."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요. 하지만 이제야 여행을 갔다 왔네요.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너무 많이 그랬어요. 제게 찾아온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스로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도무지 일상을 유지하고는 이를 견딜 수 없어서 여행을 택했어요. 뒤돌아보니 여행이 좋은 약이 된 듯합니다. 하루하루를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최고의 밀도로, 꽉꽉 채워 보냈습니다. 제가 밟고 지나갔던 모든 곳이 한바탕 '통곡할 만한 자리'였습니다. 물론, 연암 박지원은 다른 뜻으로 '통곡할 만한 자리'라고 하였으나, 제게는 문자 그대로 '통곡할 만한 자리'였습니다. 이별의 정한이 담긴 발자국들이었거든요. 그것이 설사 저 혼자만의 것일지라도. 이것 말고도 느낀 것들은 참 많았는데 문장으로 옮기자니 쉽지 않군요. 맨 처음 들려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은 인천, 박물관 의자에서도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수원, 가장 보고 싶었던 경기전을 보지 못할 정도로 비가 많이 온 전주, 비속에서 나를 울보로 만든 대전, 너무 맛있는 식사를 파는 카페가 있는 목포, 하필 휴관일인 월요일에 가서 태백산맥문학관을 관람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입맛만 다셔야 했던 보성, 좋은 독립영화관이 있는 광주, 구름 속 해돋이가 멋있었던 정동진, 약령시전시관을 꼼꼼히 보지 못해 아쉬웠던 대구. 결론은 모두 즐거웠습니다.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열차를 탈 시간이군요. 그럼 여행 안녕.
제목: 나를 꿈꾸게 만드는 그림책 <책 먹는 여우>
책 읽는 걸, 아니 책 먹는 걸 너무 좋아한 여우 아저씨. 돈이 모자란 나머지 도서관에서 책을 먹다가 쫓겨나고, 잡스러운 활자들을 먹다가 병이 납니다. 여우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서점에 가서 강도짓을 합니다. 도둑질한 책을 집에 와서 맛있게 먹지만, 결국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요. 독서 금지를 당한 여우 아저씨는 본인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마치 연필에서 생각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어요.' 여우 아저씨가 쓴 글들을 교도관 빛나리 씨는 복사해 두고 책으로 출판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로도 만들어져요. 여우 아저씨가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는 해피 엔딩.
저는 몇 번이고 이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아직은 책 읽는 힘조차 시원치 않으나 언젠가는 여우 아저씨처럼 멋진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거든요. 그래서 '여우'에 제 이름 '(권)수아'를, '아저씨'에 '아가씨'를 넣어서도 읽어봅니다. 수아 아가씨는 책을 좋아했어요. 좋아해도 아주 많이 좋아했어요.라고 읽어봅니다. 수아 아가씨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작가가 된 수아 아가씨를 기사로 다루고, 수많은 비평가들이 수아 아가씨의 작품을 연구했어요.라고도 읽어봅니다. 전 아직 젊지만, 어리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글과 함께 살면 꽤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책에서는 '감옥'으로 표현되었지만, 좋은 읽을거리가 있고 나의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감옥이 황홀할 거예요. 그리고 제가 그 감옥 안에서 평생을 살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은 좋은 책을 많이 읽기로 다짐해보기도 한답니다.
이 두 글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책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 당시 나에게는 '클리앙 활자중독당'과 '고. 모. 공.'과 '책좋사'가 큰 도움이 되었다. '클리앙 활자중독당'에서는 '강남독서모임'이라는 토요일에 강남에서 하는 독서모임이 이루어졌다. '고.모.공'은 '고전 읽기 모임을 위한 공간'의 줄임말인데, 여기에서는 고전이 주로 다루어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즉, '책좋사'를 통해서는 새로 나온 책들을 이벤트로써 받아볼 수 있었고, 1년 52주에서 앞뒤 한 주 씩을 빼고 50주 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리는 장대한 프로젝트인 '책 읽기 프로젝트 50'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제 책 읽는 수아, 아니, '책 먹는 수아'가 되어가고 있던 그때에 읽었던 책들을 복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