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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Oct 15. 2021

사회생활은 충성심과 존버 정신이 구 할이다

직장의 이해

나의 지난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좋게도 선임, 책임, 수석 등 매번 승급의 시점에서 진급에서 누락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임원 승진은 그야말로 하늘이 정해주는 일이기에 논외로 두고 직원 레벨에서 승진 누락이 없는 것만큼 큰 기쁨과 보람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승급의 과정을 겪고 보니 조직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한 과거의 내가 왜 부장한테 차별과 불평등한 처사의 희생양이 되었는지 그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는 지방대 학사 출신이라는 평범한 스펙을 가지고 있고, 최근 괄목한 만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수석/부장이 될 수 있을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대 /석박사/해외 MBA 출신 등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진급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매년 보아왔고, 특히나 수석 진급은 남녀 관계없이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pixabay

게다가 나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1도 받지 못하고 이모님 복도 없는 독박 워킹맘 아닌가. 해외 출장은 1년에 한 번, 길어봤자 일주일이라 어떻게  어떻게 소화했지만 갑자기 소집되는 4~5시 회의는 거의 참석하지 못해서 시간 조정이 필요했고 회의가 5시 반이 넘어가면 중간에 몰래 일어나야 했다. 시간에 맞춰 아이를 픽업하러 퇴근해야 하고 주중 야근이나 주말 특근도 녹록지 않으니 그 누구보다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내가 쟁쟁한 경쟁자를 제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


그 과정을 겪고 보니 회사 생활을 차지하는 구 할은 실력도 아니고, 성과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바로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존버 정신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저 성공을 위해 윗사람에게 딱 붙어서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일이라도 기꺼이 하는 것, 딸랑딸랑 아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충성심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간신이 아니라 상대 즉 상사와 조직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대리 시절, 예전 부장은 임원이 해외 출장을 가면 바로 비공개 회식, 즉 번개를 소집했다. 꼭 본인이 좋아하는 메뉴와 본인이 좋아하는 장소로 일방적으로 잡고 공지하는 것이라 그것이 참 싫었다.  나 역시도  무두절(두목이 없는 기간, 즉 임원의 해외출장 등으로 부재하는 기간을 의미한다)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고, 회사에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또 봐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비공개 회식이니만큼 전원 필참은 아니고 가능한 사람만 오라고 했지만 부장은 자신이 주최한 번개에 누가 오는지 은근히 체크하는 눈치였다. 암튼 부장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번개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양재에 살고 있었고, 부장이 번개 장소로 양재 명물인 영동족발을 지정하여 나보고 꼭 참석해라고 했지만 "부장님, 저 약속이 있어서요 호호~"하고 가뿐하게 웃어넘겼다. 특별한 약속도 없고 집에서 혼자 TV 보고 쉴지언정 번개는 가고 싶지 않았고, 그 본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지나고 보니 번개에 꼬박꼬박 불참하는 사람은 나였고, 부서 내 다른 여사우 두 명은 항상 참석했는데 그중 한 명은 특진을 한 사람이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부장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은 번개에 거의 100% 참석, 아웃사이더들은 참석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또 다른 에피소드, 그 당시는 왜 그렇게 갑작스레 보고가 잡히는 게 많은지 그에 따라 보고자료도 급작스럽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 당시는 달리는 기차의 바퀴를 바꾼다라고 했으니 조직 문화 자체가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결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보고자료 작성을 위해 명절/연휴 전날, 또는 토요일 오후 예고 없이 지금 출근할 수 있냐고 문자가 오곤 했다. 아무래도 회사가 수원에 있다 보니 수원에 거주하는 사람 위주로 연락을 했는데 그게 참으로 싫었다.  주말 출근을 할 테면 미리 알려주지 왜 개인 일정 다 흐트러지게 갑자기 연락 와서 지금 당장 올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무척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연락에는 아예 문자에 응답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 담당업무도 아니고 엄청 긴급하고 중요한 업무처럼 연락 왔지만 막상 그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여 회사를 가보면 별 일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연락이 싫어서 수원을 떠나 양재로 이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면 이런 상황에도 꼬박꼬박 출근해서 부장의 요구를 대응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역시도 좋은 고과를 받았고 MBA 지원 시 부장이 적극 어필해줬던 사람이다.

출처 : pixabay

상사라고 항상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직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도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밥 같이 먹자는데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서 은근히 기분 나쁘고, 도와달라고 했을 때 얼굴 구기지 않고 흔쾌히 도와주는 사람에 대해 호감과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였던 작은 감정과 마음들은 승격과 교육의 기회를 누구에게 분배하느냐 결정해야 할 때 영향을 끼친다. 내가 매번 기회 앞에서 좌절하고 찌그러졌던 것은 평소 부장에게 어필하지 못한 탓도 컸다.

그 어필은 실력, 성과가 아니라 번개 참석, 나와서 도와달라고 손 내밀었을 때 거절했던 그 작고 소소한 일에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 대리 시절을 거쳐 과장이 되니 리더의 고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조직관리는 부장이 하는 거지,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고, 회사가 잘 되던 부서가 잘 되던 말던 나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나는 회사 그만두면 끝이니까)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말에 연락하는 부장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부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도 큰 역할 했다. 새로 오신 부장은 인격적으로 훨씬 훌륭한 분이었다.) 오죽 답답하고 급했으면 연락을 했을까. 연락하는 사람 마음 역시도 편치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문자가 오면 가능한 회사로 달려갔고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회신을 꼭 남겼다.  업무 지시를 할 때도 부장의 피드백을 생각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지 나의 의견도 조심스레 펼쳐 보았다.

부장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있으면 10분 전에 리마인드를 주고, 일정이 바쁠 때는 데드라인이 있는 일에 대해 전체 스케줄을 간단하게 브리핑해주었다. 비록 5시에 퇴근하더라도 일이 생기면 7시에 다시 돌아와 1시간이라도 문서 작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충성심이란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우리는 한 배를 탄 동료'라는 마음이다. 사람마다 노의 크기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래서 한 번에 물을 퍼내는 양과 전진하는 속도는 다를지언정 성실하게 노 젓는 사람과 자신의 실력을 믿고 대충 노 젓는 사람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조직과 상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부터 점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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