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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Oct 18. 2021

보고는 나의 몫 결정은 상사의 몫

직장의 이해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너무 소소하고 사소해서 이걸 보고해야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상황이 생긴다. 이 정도면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내가 결정해도 되지 않을까 유혹을 느낄때가 있다. 작은 판단 착오가 큰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며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니 사소한 일도 고민하지 말고 과감히 보고하고 상사의 결정을 기다리자. 


입사 3년차에 이스라엘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본사에 테스트랩이 없어서 프로젝트 개발은 거의 해외에서 이루어졌다. 킥오프 미팅 이후 프로젝트 멤버들은 출국하여 해외에서 개발하고 거의 상용화 임박해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프로젝트마다 한달 이상 장기출장자(일명 붙박이)를 1~2명 선정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1~2주씩 번갈아가며 출장을 나가는 형태였다. 이스라엘 프로젝트 당시는 내가 붙박이로 뽑히게 되어 정확히 33일을 이스라엘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무실에서는 한달 이상 장기 출장자에게 주말 하루 예루살렘, 사해를 둘러보는 일일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매일 사무실-호텔만 왔다갔다하는 지루한 일상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붙박이다보니 나에게 먼저 알려왔고 그때 함께 출장 나와있던 신입사원 후배, 동료, 대리 1년차 선배와 토요일 일일 투어를 가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금,토가 주말

해외 사무실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한 사실을 본사에 있는 상사에게 알려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으나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토요일 아침이어도 7시간 시차 때문에 한국은 거의 토요일 늦은 오후이니 딱히 연락올 일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간 찜찜한 마음이 1% 남아 있었지만 투어에 대한 보고는 저~멀리 넘겨버렸다.


드디어 투어 당일 아침이 되었다. 리무진 방탄 차량이 호텔 앞으로 픽업왔고 우리 4명은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한시간 남짓 운전하여 첫번째 코스인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날씨는 어찌나 화창하던지 일일 여행에 최적인 그런 햇볕이었다. 


source : pixabay


주차를 하고 황금돔과 은색돔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한 순간 후배의 전화기로 82-54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번호만 봐도 한국에서, 그것도 본사 사무실에서 온 전화였다. 시간은 이미 토요일 오후 3시인데 이 시간에 전화가 오다니 뭔가 급한 이슈가 있을 것만 같았다. 후배는 당황해서 전화기를 꺼버렸다. 

그러자 대리 1년차 선배 전화기로 다시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며 선배의 통화 내용을 같이 들었다. 내용인 즉슨 지금 바로 SW를 보낼테니 폰에 다운로드해서 테스트해보고 버그가 고쳐졌는지 확인해서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선배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투어를 나와있어서 확인할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결국 사무실로 돌아가서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여행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본사와의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투어담당자에게 이 상황을 전달하는 내 몫은 남아있었다. 우리가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모두 얼굴을 구기며 맥빠져하고 있으니 한국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충 눈치는 챈 분위기였다. 이러이러한 상황이어서 우리는 사무실로 가야하니 데려다 달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무척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투어간다고 상사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냐, 왜 주말에 일을 하라고 지시하냐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내가 하는 대답은 궁색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상사가 지시한대로 SW를 다운로드받아서 테스트했다. 그리고 우리가 테스트 결과를 매일로 발송한 시점은 이스라엘 시간으로 오후 1시, 한국 시간은 저녁 8시.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퇴근한 이후였다. 본사에서는 빨리하라고 다그쳤지만 결국 그들은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출근했을때 결과를 확인했다. 우리가 굳이 예루살렘에서 투어를 중단하고 돌아올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테스트를 끝내고 남은 토요일 오후를 허무하게 멍때리며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현지에서 투어프로그램을 제공했음을 미리 상사에게 보고했더라면 전화가 왔을때 이러이러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내는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전화가 왔던 그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현지 인터넷 사정이 안좋다던지, PC가 고장났다던지 뭐라고도 핑계를 대며 몇시간 정도는 벌었을 것이다.) 비록 주말이지만 어쨌든 출장지에서 몰래 놀러갔다는 사실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한마디 말도 못해보고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은 1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스라엘이 그리 쉽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여행이 아니고도 업무적으로도 이스라엘 프로젝트는 붙박이 출장 한 번으로 끝나버렸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가 본 적이 없다. 아마 이번 생애에서 더 이상 갈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 일을 계기로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 나에게 안건을 물어본다면, 그것이 의사결정의 문제라면 일단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의견을 듣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보고를 하면 나는 당당해질 수 있으며, 책임의 부담도 벗을 수 있다. 이때까지 발생한 각종 전자제품, 차량의 폭발 사고며 외부로 드러난 문제도 결국 보고의 문제였다.  작은 이슈를 담당자 선에서 덮었느냐 얼마나 빨리 위로 에스컬레이션해서 의사결정을 받느냐 그 결과의 차이는 크다.


기억하자. 결정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그건 상사의 몫이며 당신은 보고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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