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을 조심하자
일상의 이해
꽤 오래전에 방영한 김선아, 김희선 주연의 <품위 있는 그녀>라는 드라마가 있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내가 정주행 한 마지막 드라마일 것이다.)
재벌가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이 드라마의 소재가 카더라가 아닌 두 재벌 기업의
사생활 실화를 다뤘다는 점이었다.
우아진(김희선 역)은 제지회사 대성펄프가의 둘째 며느리이다. 이 집안에 제일 큰 어른은 아진의 시아버지이자 제지회사 대표인 안 회장(김용건 역).
그의 병시중을 들기 위해 젊은 간병인인 박복자(김선아 역)가 고용된다.
박복자는 주어진 일만 해내는 여느 간병인과 다르게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서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회장을
걸을 수 있게 해 준다.
그 누구도 케어해주지 않던 그의 외로운 마음도 보듬어 주어 서른 살 가까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회장과 결혼한다. 결국 박복자는 그 집안의 안주인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박복자는 그 회장을 사랑하기는커녕 돈을 보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범죄자이자 사기꾼이다. 자신의 몸을 날려 회장을 구한 것도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와 연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복자에게 눈이 먼 안 회장은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결혼식을 올리고 재산과 경영권을 박복자에게 일임한다. 그리고 탄탄하다고 여겨졌던 가족 기업의 운명은 순식간에 몰락한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사기당하는 것은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회관 같은 데 모아서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간식도 나눠주고
살갑게 "어머님", "아버님" 부르며 마사지도 해주고
그렇게 마음을 열게 한 다음 수순은 뻔하다.
갑자기 몇 백만 원짜리 옥장판이나 의료기기가 집안에 있는 것이다. 자식들이 그것들 다 사기꾼이라고 환불해 오라고 난리여도 오히려 그들을 두둔한다.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인 건지도 모른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위에서 말한 것과 유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노인이라 사회 경험이 없어 사기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비슷한 일을 겪어보니 나에게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에게는 무장해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독박 육아 고행이 시작되었다. 친정과 시가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남편마저 아이가 출산하는 그 달에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나한테 대놓고 본인은 회사 다니고 학위 따느라 바쁘니까 아이는 혼자 키우라고 했다. 나의 복직에 맞춰 도우미 이모님을 구했는데 내가 면접에서 금방 그만둘 사람을 걸러낼 안목이 없는 건지 인복이 없는 건지 2년 동안 시터 이모님이 4번이나 바뀌었다. 그나마 세 번째 분이 아이를 1년 반 봐주셨고, 6개월 동안 3명을 겪어냈다. 구인 공고 올리고 면접 보고해야 할 일 설명해 드리고 겨우 적응될 시점에 그만두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다른 것 같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으니 나 홀로 짊어져야 할 육아가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언니나 친정엄마가 와서 아이케어를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그 당시 내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아이를 데리고 편하게 놀러 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딱 그 시기에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다.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 나이도 비슷한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 로서 만났더라면 친해지지 않았을,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소유자였지만 나는 아이와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했기 때문에 그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공원과 키카를 함께 가고 소소한 일상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그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다. 우리 아이를 위해 늘 기도한다는 말과 아이에게 평생 이모가 되어주겠다는 말에 감동했다. (나는 남자형제 하나뿐이라 아이에겐 이모라는 존재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냈다.
그 아름다운 우정의 순간에도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들은 특정인에 대해 앞에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렇게 불만이 있으면 대상자에게 이야기를 해서 풀거나 아니면 친하게 지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상 앞에서는 세상 다정하고 친절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나에게는 험담을 늘어놓았다. 험담의 대상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할 테지만 나도 뻔히 얼굴 마주하는 사이인데도 자꾸 험담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맞장구치며 동조를 해주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여기며 그들이 원하는 리액션을 보여준 것이다. 나에겐 험담의 대상보단 그들이 더 소중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하던 행동을 결국 나에게도 똑같이 했다. 자신의 아이에게 방해가 되니 수업에 나가달라고 했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잇속을 먼저 챙기는 그 모습, 나를 도구로써 이용했다는 그 사실에 분노가 폭발했다. 하지만 제일 한심스러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고 사회생활을 그렇게 해도 어리숙하게 이용당하고 순진하게 속아 넘어간 내가 싫었다. 그들은 이미 그 모습으로 수십 년간 살아왔고, 자신이 잘못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그 본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완전히 신뢰한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여겨졌다. 그렇게 감정도 식었고 관계도 지나갔다.
시간은 흘렀고 마주칠 기회는 여전히 있고, 나에겐 다 과거의 일이고 그들도 내겐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에게 사과를 하거나 그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았는데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은
무슨??? 참... No 이해다. 차라리 내 욕을 하거나 서로 불편하니 서로가 쌩~하는 행동이 오히려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분노했는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간 과정 다 건너뛰고 웬 인사? 참 나와 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다.
평소의 나라면 가까이 하기는커녕 먼발치에서 피해 다닐 만큼 다른 사람들이었데 그렇게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
다시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오면 김용건은 박복자에게서 그 누구도 채워주지 않던 외로움이 충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일구어 온 기업을 송두리째 넘기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가족이 채워주지 못한 육아의 외로움을 그들이 채워줬던 건 사실이다. 나의 결핍이 충족될 때 나의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분별력도 떨어졌다.
씁쓸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예순의 나이쯤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인생을 헛살았다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만나고 옆에서 그 과정을 보아온 남편은 "하나님이 너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메신저를 보내줬다고 생각해 봐"라고 했다. 아픈 만큼 늙었지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