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해
몇 해 전 친구가 꽃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했을 땐 나와 전혀 관계없는 여유로운 자의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출산을 빨리하고 자매를 키우다 보니 상대적으로 육아로부터 자유로웠기에 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짬'이 나에게도 조금씩 생기면서 나도 요즘은 종종 꽃을 사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사실 예전에는 꽃 선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받았을 때 예쁘고 기분 좋은 것은 잠시이고 시드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불편함,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꽃은 예쁜 쓰레기였다.
하지만 요즘은 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이 들어서인지 꽃이 예쁘다. 그리고 만개한 꽃을 살 때도 있지만 도매시장이나 온라인에서 사면 봉오리 상태일 때도 많다. 예전에는 귀찮게 여겼던 줄기 끝을 자르고 라이터로 살짝 지지고 정수한 물에 보존제를 살짝 뿌리고 (없을 땐 락스 한 방울) 꽃병에 꽂고 하는 과정이 이제는 번거롭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며 언제쯤 꽃 피울까 기대하고 꽃이 폈을 때 그 설렘과 보람은 배가 된다.
특히 5월은 작약의 계절. 작년 이맘때도 작약을 샀는데 올해는 더욱 풍성한 다발을 주문했다.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제는 만개한 꽃에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꽃 피기 직전 봉오리 상태에서의 기대감이 더 좋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어른들로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이 "지금 너네는 교복만 입어도 이쁜 나이이다"였고, 당연히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여드름 숭숭 나고 꾸미지 않은 얼굴이 어찌 이쁠 수 있단 말인가. 활짝 핀 꽃이 예쁘듯 화장하고 가꾼 얼굴이 이쁜 건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만개한 꽃은 이제 시들 일만 남았다는 것을. 꽃 피기 직전의 봉오리 상태가 품고 있는 생명력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은 그 어떤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며칠 뒤면 이 작약은 곧 시들 것이고 쓰레기통으로 향하겠지만 남은 봉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은 계속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