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이해
지난 추석 연휴 지리산 일대를 여행했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재래시장 가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번에도 화개 장터에 들러 칼과 녹차와 국화차, 찻잎 거름망이 있는 텀블러 등등 여러 가지를 샀다. 딸아이도 팔찌를 산다고 하여 어느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마침 그 매장은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 하여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몇 달 전에 온누리 상품권을 200만 원 치 구매한 이력이 있다.)
QR코드가 보이길래 QR 결제를 하겠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그건 잘 안된다고 신용카드 포스기를 들고 오셨다. 나는 일단 QR 결제를 시도해 보고 안 되면 카드로 처리하겠다고 말씀드리고 QR을 스캔하니 무리 없이 결제가 되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그건 제로 페이 QR이고 본인 계좌에는 입금이 되지 않는다며 결제를 취소해 달라는 것이다. 이번 주에도 벌써 십만 원 가까이 손해 봤다고 거의 우는소리를 하셨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고, 정상 결재된 것을 다시 취소하는 것 역시 귀찮았지만 사장님이 목발을 짚고 계셔서 기분 좋게 처리하고자 했다. 다행히 금요일이라 고객센터가 전화 연락이 되어 금방 결제 내역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거래건은 고객이 취소할 수 없고 고객센터도 취소할 수 없고 가맹주가 디지털 온누리 앱에서 직접 취소 가능하다고 알려줬다. 이때부터 스피커폰 모드로 변환해서 사장님과 나, 고객센터 3자 통화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저는 손님이고요. 제 디지털 온누리 앱에서는 정상 결제되었다고 보이는데 사장님은 안 보인다고 하셔서요. 제대로 결제된 것인지 확인 좀 해주세요."
(고객센터)"아 그럼 사업자 등록번호 좀 불러주세요."
(나) "사장님, 사업자 등록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사장님) "아... 생각 안 나는데... 상호로 확인 안됩니꺼?"
(고객센터) "가게 이름이 똑같은 곳도 있어서 사업자 번호 아셔야 해요"
(사장님) "아... 못 외우는데... 어떡하지예?"
옆에서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마침 카운터 옆에 영수증이 있었고 영수증에 사업자 번호가 찍혀 있어 내가 대신 불러드렸다.
(고객센터) "사장님, 만원 제대로 결제된 거 맞아요."
(사장님) "나는 안 보이는데 우예 된겁니꺼?"
(고객센터) "디지털 온누리 앱 실행하셔서 가맹점 모드 누르시면 보실 수 있어요."
(사장님) "내 폰에는 온누리 앱이 안 깔려 있는데예. 제로 페이에서는 안보여예"
(나) "사장님, 제가 앱 깔아드릴게요."
옆에서 듣던 내가 사장님 폰에서 플레이스토어를 실행시키니 온누리 앱이 깔려 있었다. 접속하려고 했더니 간편 비밀번호를 누르는 화면이 나왔다.
(나) "사장님, 비밀번호 6자리 눌러보세요."
몇 가지 누르는데 다 실패, 이제부터 인증 지옥이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내 폰으로는 계속 고객센터 연결을 한 채 사장님 폰에서 휴대폰 통신사 인증-본인확인을 시도했다. 주민번호 누르고 인증번호 누르고... 온누리 앱을 실행시켰다. 가맹점 모드를 눌렀더니 십여 분 전에 내가 결제한 내역과 추석 연휴 사이 있었던 거래 내역도 다 보였다.
(나)"사장님, 다 보이지요? 손해 본 거 아니라니깐~이제 이렇게 확인하시면 돼요. 디지털 온누리 앱 누르시고 가맹점 모드예요."
(사장님)"아이고야, 나는 이때껏 손해 본 줄 알았네. 이모 덕에 돈 찾았네요. 고맙십니다."
계속 울상이던 사장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나에게 고맙다며 귀이개 2개를 선물해 주셨다.
고객센터 연결하고 앱 업데이트하고 인증 및 앱 실행해서 거래내역 확인까지 걸린 시간은 십여 분. 간만에 발동한 오지랖 덕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돈도 찾아드리고 디지털 온누리 앱이 정상 결제되는 것을 확인시켜 드렸다.
간만에 좋은 일 했다는 뿌듯함도 들면서 한 편으로는 짠한 마음도 들었다. 시골장터에서 불편한 몸으로 액세서리 판매 매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겐 이 디지털 거래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버거울까.
이후 화개 장터를 떠나 하동 케이블카를 탔고 또 박경리문학관을 다녀왔다.
다른 곳을 관광하면서도 사장님이 내가 알려준 방법을 잘 숙지했는지 계속 염려가 되었다. 컴퓨터나 모바일이나 남이 동작하는 걸 보면 쉬워도 내가 직접 하려면 어렵다는 걸 알기에 한 번 더 알려드리고 싶었다. 숙소 가는 길은 동선상 화개 장터를 들르게 되어 있어 다시 가볼까 싶었는데, 저녁 7시가 넘어서인지 불이 다 꺼져 있었다. 내가 여기를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내가 알려드린 것이 득이 되었을까, 오히려 독이 되었을까. 앞으로 또 그런 문제가 있다면 고객센터에 연락하든 옆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든 꼭 해결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