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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결핍이 미래의 커리어를 결정한다

육아의 이해

by 꿈기획가

직장 생활을 한지 어언 20여 년이 넘었다. 내가 지금껏 일하고 또 워킹맘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학창 시절 친구들, 사회 나와서 친분을 맺은 사람들도 전업주부나 사업하는 사람들보다는 워킹맘이 많다.

그리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나와 비슷하다. 가정 형편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지만 착실하게 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이후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이 사회와 조직이 만든 시스템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지인의 지인으로 인맥을 조금 넓혀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비슷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여 다른 삶의 모습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교 때 같은 과 친구는 수석으로 입학했다. 의대에도 진학할 수 있었지만 컴퓨터가 좋아서 전산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박사 계속 공부를 했기에 교수를 하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주말부부를 했는데 임신을 하자 과감히 공부를 접고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엔 그 선택이 너무 어리둥절했다. 10년 가까이 가깝게 지낸 친구지만 놀라웠고 낯설기까지 했다. 능력을 썩히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업주부가 된 친구와 워킹맘이 된 나는 각자의 삶이 바쁘기도 하고 삶의 모습이 점점 달라져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졌다.


30대까지만 해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친구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친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셨다. 성장 과정에서 아빠가 함께 한 순간은 거의 없었다. 가족이 완전체로 있었던 기억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고 전화 통화도 쉽지 않고 늘 편지로만 소통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그 친구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는 큰 결핍이었고 살아가면서 최우선 순위는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공부나 커리어 등은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자 후배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후배의 아내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아내도 학창 시절 공부를 꽤 잘했으며 연봉이나 복리후생 등으로 봤을 때 국내에서 손꼽히는 좋은 직장에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면서 미련 없이 그만뒀는데 아내의 부모님이 사업을 하셨다고 했다. 부모님이 밤에 물건 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엔 늘 할머니나 이모에게 맡겨졌고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친척 집에서 자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할 때부터 임신하면 회사 그만둘 거라고 아이는 직접 키울 거라고 했단다. 후배의 와이프에게도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는 상처이자 결핍이었고 커리어와 육아의 갈림길에 과감히 커리어를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부모님이 지방에서 일하셔서 떨어져 지낸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부모님의 부재가, 가족들이 흩어져 지내는 게 큰 결핍이 아니었다. 나의 가장 큰 결핍과 곤궁은 금전적인 부분이었다. 우리 집은 늘 돈이 쪼들렸고 부모님은 돈 때문에 싸우셨다. 육성회비나 수학여행 등 돈 들어가는 이벤트는 스트레스였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경제적 자립은 십 대 시절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일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남들에게 능력 있어 보이고 싶고 사회적 평가가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행복하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의 결핍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리라. 결핍이 없는 인생이 있겠나 마는 자신의 결핍을 이해한다면 어떤 선택이 후회 없을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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