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이해
십수 년 전 무자식이던 시절 라스베이거스에서 남편과 오쇼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이 남자와 전쟁을 하려고 결혼을 했나 싶을 정도로 늘 싸웠던 시기인데 아웃렛에서 옷 바꾸는 문제로 공연 직전에 또 싸운 것이다.
나는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고 씩씩거리느라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그 좋은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왜 싸우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 '나라면 아예 공연장에도 들어가지 않았겠다' 할 정도로 어이없고 일방적으로 내가 당한 싸움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다 퍼부었으니 개운한 마음으로 신나게 공연을 즐겼다. 그 모습이 더 얄미워서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 공예를 하던 배우들이 점프하는데 바닥이 갈라지며 물속으로 점프하는 것은 대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아이 낳고 키우고 회사 다니느라 라스베이거스는 다시 갈 일이 없고,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그때 제대로 한 맺힌 건지 2년 전 부부 상담하던 도중에도 십수 년 전 오쇼 에피소드는 또 소환되었다 ㅋㅋ
그래서 원래는 나 혼자 VIP 티켓으로 예매해서 제대로 즐기고 오리라 마음먹었다. 주중에 잠실에 다녀오겠다 하니 남편이 온 가족 같이 가서 보고 좋은 추억을 남기자 했다. (이제 와서야 수습 ㅋㅋ)
그래서 보고 왔는데 결론은 음음...
기대에 못 미친 포인트는
1. 물속 점프는 없더라
저는 오쇼 수준의 스펙터클을 기대했는데 그건 전용 시어터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아 그렇지... 잠실경기장에서는 힘들 수도 있었겠다 뒤늦게 깨달았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기대 수준을 처음부터 낮출 수 있었을 텐데.
2. 저글링에서 3번 실수
제가 본 타임에만 그랬는지 몰라도 두 사람이 링과 곤봉 주고받는 저글링 하는데 3번 떨어뜨렸다. 다른 관객들은 괜찮아 괜찮아 외쳐주었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아니 내가 낸 돈이 얼마인데... 저 멤버들은 신입인 건가, 나중에 혼나겠지... 이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3. 일부 불편했던 관객과의 소통
배우들이 돌아다니며 관객들에게 팝콘도 뿌리고 걸레질 시늉으로 머리 닦아주곤 했는데 좀 불편했다. 남자분 한 명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하는데 스텝이었을까? 상당히 오랫동안 뭘 시켰다. 제스처도 따라 하게 하고 배우들 눕는데 같이 눕고 왕관 쓰라 하고... 그 남자분도 딱 보니 내향인인데 쳐다보는 내가 다 기 빨림... ㅠㅠ 공연 끝나고 나서 같이 오신 여자분과 배우들과 같이 기념촬영하던데 그 정도로 힘들게 했으면 공연 티켓 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
4. (갑분) 원더박스 공연이 훌륭했다
여름에 파라다이스시티에서 호캉스 하고 다음날 원더박스에 갔다. 루나 이클립스라는 30분짜리 공중서커스 공연이 12시 반, 5시 반 두 차례 있었어요. 별 기대 없이 봤는데 공중곡예가 어찌나 아찔하고 조마조마하던지 손에 땀을 쥐고 봤다. 음악과 의상도 훌륭해서 낮 공연 보고 5시 반까지 기다렸다가 볼 정도였다. 이 두 서커스를 비교해 보면 퀄리티의 차이가 거의 없다.
공중곡예 온리 (루나 이클립스) 30분짜리냐 vs 공중곡예+저글링+링 곡예+의자 쌓기 등등 종합 공연(태양의 서커스) 2시간 반짜리냐
회사 동료들이 볼만하냐 물어볼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오쇼 봤으면 쿠자에 실망할 수도 있다.
티켓값이 얼마인데... 생각이 자꾸 날 것이다.
차라리 주토피아 2 보고 원더박스를 가라.
- 태양의 서커스가 처음이라면 추천한다.
멋진 종합예술이자 공연임은 확실하다.
아래 사진은 태양의 서커스
아래는 원더 박스에서 진행한 루나 이클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