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기획가 Jan 10. 2022

사진, 일하는 순간의 기억을 담다

영화 모가디슈를 보면 

북한 대사관 인력과 그 가족들이

대한민국 대사관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측이 폭격을 피해 도망친 곳이 

남측이라는 것, 목숨을 건졌지만 이들을 

역시 믿을 수 있을지 모르는

긴장이 팽팽한 상태이다. 

이념이니 무엇이니 어쨌든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서로에 대한 불신은 잠시 내려놓고 

같이 밥 먹는 장면은 정말 기록에 남을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그 사진이 복선이 될 줄 알았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서 약간 아쉬웠다.  


인생을 살면서 사진을 찍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탄생부터 시작해서 입학, 졸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는 

항상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입사해서도 사진을 꽤나 찍었다.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시기는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였다.

합숙 교육을 한 달 넘게 받으니 

개인 사진, 단체사진 등 사진이 많았다. 

그리고 부서 배치를 받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을 찍는 일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일단 일이 바쁘니 사진 찍을 여유도 없고

보안 정책 때문에 사진 촬영 자체도 쉽지 않은 탓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진이 

회식, 야유회, 워크숍 행사 사진 정도?


그런 특별한 행사 말고 일하는 일상을

무심히 찍었는데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해외 출장이 더욱 그러하다.

관광지에서 예쁘게 포즈 취해 찍은 

사진보다 일하면서 찌든 사진이 

더 특별하고 와닿는다. 

나의 두 번째 해외 출장지인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법인이 없었다. 

출장을 가면 현지 사무실 한 칸을 빌려 

사용했고, 출장자가 몇 명이 되든 

기다란 책상 하나에 나란히 붙어 앉아야 했다. 

책상 위에  노트북, 휴대폰, 케이블 그 외 

개발도구와 과자 부스러기까지 

늘어뜨려 놓아 아수라장이 된 책상을 

누군가가 찍은 적이 있다. 


또 그 당시엔 레지던스에서 저녁밥을 

직접 해 먹었다. 

과제 PL인 과장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누구는 밥을 하고 누구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또 누구는 설거지를 하고...  

그 장면 역시도 누군가 사진을 찍었더랬다.



열악한 출장 환경과 그곳에서 

고군분투했던 나의 20대가 생각나서일까. 

조금의 편집도 없는 지저분하고 특징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사진인데 

가끔씩은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3년 전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할 때 일이다.

당시 SW 담당 상무님이 회사에서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셨다.

돌이켜보면 지금이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 프로젝트 Kick-off 미팅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다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다들 쭈뼛쭈뼛한 상태였지만 어쨌든 

모두 환한 표정으로 프로젝트 성공을 

염원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그 프로젝트는 1여 년 만에 

드롭되었다. 쫑파티 겸 마지막 회식에서도 사진을 남겼다.

kick-off 미팅 땐 30명이 넘는 사람이 

회의실 한 면을 꽉 채웠는데

쫑파티 땐 10명도 남지 않았다.

아쉬움과 씁쓸함이 가슴 한편 남았지만,

3년 넘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함께 일했던 사람들 간의 케미와 두 장의 사진이다. 


이때까지 회사를 다녔던 날보다 

앞으로 회사를 다닐 날이 적다고 

생각되어서일까.

그리운 건 그때 열심히 일했던 

나의 열정인 걸까.


이제 회사에서도 가끔씩은 

일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출간이나 강연을 할 때 일하는 현장이 

담긴 사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으니 

더더욱 사진을 자주 찍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에서 만난 좋은 리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