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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Feb 21. 2022

할머니와 시터 사이에서 엄마가 육아의 중심이어야 한다

워킹맘의 이해

워킹맘에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힘들었던 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누구나 한 시간은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 열나는 아이 해열제 먹여가며 어린이집 보낸 사연이며 수족구, 독감 등의 법적 전염병과 겹친 야근, 주말특근, 출장 등으로 발 동동 구르고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눈물 흘렸던 사연 등등은 마치 남자 셋만 모이면 군대에서 고생한 썰을 밤새 푸는 것과 동일하다.


나 역시도 독박 육아를 하다 보니 맘 졸이던 다양한 사건이 많았다. 그중에서 황당 베스트 사건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를 열 받게 했던 그때 그 사건!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사용했다. 돌까지는 내 손으로 키웠고 복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어린이집에 보낼 것인가, 시터를 쓸 것인가.


나는 양가 도움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단 친정은 거리가 멀고 엄마도 뇌병변 2급의 장애인이었기에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결혼 초만 해도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봐주시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내가 출산한 시점에 시어머니 연세가 이미 6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연로하셔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허리와 무릎이 불편해 아이 목욕도 시키지 못하시고 업어주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시어머니 혼자  아이를 본 적도 없었고 시어머니 집에서 아이만 재워본 적도 없었다. 아무리 걷기 시작해도 돌쟁이 아이 육아가 씻기고 업어주고 안아주는 일이 대부분인데 상황이 이러니 시어머니도 아이를 돌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터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여느 할머니들이 그렇듯 본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저렇게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냐", "애는 엄마가 키우는 게 맞는데 일은 해야 하고... 휴", "내가 몸이 건강했으면 하나밖에 없는 우리 손녀 봐줄 텐데 마음이 안 좋네" 등등 나는 복직을 위해 굳게 마음먹었는데 옆에서 시어머니만 애가 타고 있었다.  사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제일 속상한 사람은 아이 엄마가 아닌가. 다 아는 사실에 한탄만 늘어놓으시는 것이 답답하고 듣기 싫어서 "어쩔 수 없죠 뭐" 이렇게 대응했다.


여러 이모님의 면접을 거쳐 한 분을 뽑게 되었고 나 역시도 복직을 하고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맞이한 첫 번째 금요일 오후 2시쯤  갑자기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러고는 대뜸 "애 봐주는 이모는 내가 퇴근시켰다. 앞으로 내가 매일 와서 우리 손주 볼 거다" 이러시는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이모님께 9시부터 7시까지 봐달라고 했는데 아무 연락 없이 집에 오셔서 이모님을 집에 보내다니?


어차피 전화로는 이야기가 안될 것 같아 신랑한테 빨리 퇴근하라고 전화하고 5시 되기를 기다려 칼퇴를 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물었다. 시어머니 왈 낯선 사람에게 아이 맡기는 게 도저히 맘에 안 놓인다며 시터 이모님께 본인이 앞으로 매일 오후 1시가 되던 오후 3시가 되던 올 테니 그때 퇴근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신랑과 내가 시어머니께 아이 목욕은 누가 씻기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너희들이 퇴근해서 하면 되지" 


와~ 복직 일주일 만에 무슨 날벼락인가. 정녕 어머니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시는 것인가, 우리를 훼방 놓으려는 것인가. 내가 시터 이모님 구할 것이라고 면접보고 있다고 이제 확정되었다고 말씀드릴 땐 아무 언급 없으시다가 복직하자마자 나 없는 시간에 몰래 와서 본인 뜻대로 상황을 헝클어 놓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시간을 정확하게 나누는 것도 아니고 이모님 급여는 급여대로 다 지급하면서(그것도 월급 주는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아웃 소싱하기 원했던 분야인 아이 목욕은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그야말로 뒷목 잡는 시추에이션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어머니에게 화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모님께 나의 생각을 알리는 일이었다. 시어머니 대응은 신랑에게 맡기고 얼른 이모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던 원래 내가 면접 볼 때 말씀드린 요구사항이 유효한 것이라고 전달하고 확답을 받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은 되지 않고 이모님이 문자를 보내셨는데 지금 교회에서 저녁 기도 중이라며 밤 11시 넘어야 끝난다는 것이다. 과연 월요일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을지 그야말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밤 11시까지 기다렸지만 이모님은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 울분과 분노는 시어머니에게 따질 수도 없고 신랑을 잡아 족치는 걸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모님 와 연락이 닿은 것은 다음 날 오후 2시쯤이었다. 먼저 혼돈을 드려 죄송하다 말을 전하며 시어머니 말씀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원래  이야기되었던 대로 아이를 봐달라고 전했다. 

그리고 내가 신랑에게 밤새 퍼부은 만큼 신랑도 시어머니에게 심하게 잔소리를 했다. 시어머니는 그것에 속상해하시며 "앞으로 너네 집에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셨고, 그 뒷수습은 신랑이 나에게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이 상황 또한 짜증이 났지만 혀 깨물고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그렇게 10년이 훅 지난 것 같은 주말을 보내고 겨우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 해프닝(?)의 최대 피해자는 나인데 내가 양쪽에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애 맡기는 사람이 죄인이구나 싶었다. 


요즘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항이 많다. 체력은 기본이고 운전이 가능해야 하고 줌 수업에도 서포트가 가능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차라리 한 발자국 물러나서 아이 엄마가 헬프를 요청할 때 도와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본인이 주양육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딸이나 며느리의 스트레스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 사건을 겪고 나니 이모님께 미리 할머니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와서 뭐라고 하시든 그건 아이 엄마와 협의된 사항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고 "아이 엄마와 이야기해볼게요"라고 넘겨버리시도록 말이다.


어느 집이든 특히 그 아이가 첫째 아이고, 첫째 손 주면 엄마도 걱정이 많지만 할머니도 걱정이 많다. 육아에 대해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옆에서 한마디 하면 마음이 약해지고 휩쓸리기 쉽다.


하지만 할머니가 이모님께 급여 주는 사람이 아닌 이상 주양육자이자 고용주는 아이의 엄마이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원래의 양육조건과 고용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엄마의 중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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