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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Mar 02. 2022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 자존감이 사는 남자들

맞벌이의 이해

나는 공대를 졸업하고 전자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년 넘게 내가 속한 커뮤니티는 항상 남자가 70% 이상인 남초 사회였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과 대화할 일이 많고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만인의 공통 주제인 동산, 주식 외에도 예상 밖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도 나누는데,   그 주제 중 하나에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도 빠지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집에서 아침을 어먹고 다니느냐가 주요 화두이다.


우리 회사는 아침 식사부터 저녁 식사까지 하루 세끼를 제공하는 회사이다. 주부에게는 그 어떤 혜택보다 고마워하는 아침식사가 7시에 시작되는데 사장과 그 최측근은 7시에 식당 앞에서 만나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처럼 아침식사 제공이 회사에서 직원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복리후생이자 혜택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는 분들도 가끔 있다. 그리고 그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이다.


몇 해 전, 조직개편으로 새로운 팀장님이 오신 적이 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획득하여 미국 시민권자에 인도 연구소에서 연구소장으로 10년을 역임하신 분이었다.  점심식사시간에 식당으로 이동할 때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는데 팀장님이 남자 후배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너 집에서  침밥은 얻어먹냐?"으잉?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외국에서 지낸 기간이 더 긴 어찌 보면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선시대급(?) 질문하시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팀장님 본인은 아내가 항상 아침밥을 차려준다고 이야기하시는 순간 미세하게나마 어깨가 솟고 광대뼈가 승천하는 것을.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이 하나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또한 그 유사한 트로 "나는 밤 10시에 가도 아내가 야식 만들어준다~"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귀엽지 않은가. 마치 초등학생들이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00 만들어줬다~" 자랑하는 것처럼 나이 40 이상의 중년 남자 대화 중에 아내가 차려주는 밥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식사가 집에서 대접받고 사는 남자의 상징인 듯하다.


그리고 사장님과의 대화 중에  (내가 사장님과 직접 대화했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임원과의 미팅에 회의록을 쓰기 위해 동석했다는 의미) 사장님이 출장 가방은 아내가 싸준다는 말을 언뜻 하셨다. 그랬더니 그걸 캐치한 (눈치 빠른) 상무가 이런 말을 했다. "아~그래서 사장님 와이셔츠가 항상 반듯하군요. 저는 기러기라 제가 직접 세탁 맡기거든요. 부럽습니다." 그때도 보았다. 사장님의 미묘한 광대승천을.


사회초년생 시절 서울 사무직에 종사하여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남사친이 이런 말을 했다. 정장은 매일 세탁할 수 없지만 매일 관리하는 옷은 다르다는 것이다. 대충 입는 옷은 바지 무릎 뒷부분에 접힌 주름이 생기지만 누군가 다려주는 옷은 새 옷처럼 뒷부분 주름도 짱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고 굳이 말 안 해도 남자들끼리는 알아본다는 것이다. 저 남자는 엄마든 아내든 누군가가 신경 써주는 남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나는 전자회사 다니기에 내 주변 대부분의 남자들의 옷차림은 후줄근하다. 공대남 출신이 직장인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체크남방, 청바지, 면바지, 운동화에서 돌려막기 식으로 입는다. 때로는 저 브랜드가 교복인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자주 보인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남사친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남편 옷차림에 신경 써줘야 하나? 생각을 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결국 남자들은 아내가 차려주는 밥과 아내가 다려주는 옷을 좋아하고 또 그걸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침 차려달라고 하면 버럭 화를 냈을 것이다. "너만 돈버냐? 나도 벌거든? 바쁜데 왤케 해달라는게 많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요즘은 다행히 밀키트와 배달이 잘 되어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리고 의류관리기가 있어 표준코스로 작동시키면 웬만큼 다림질한 효과가 나온다.  남자의 자존감을 위해 오랜만에 아침상을 차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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